절의 창건주나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국가의 억불정책으로 승려들에 대한 핍박이 심해지자 이를 피해 승려들이 산으로 숨어들어가 흥천사(興天寺)를 지었다고 전해온다. 17세기 말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편찬한 『강도지(江都志)』에는 폐사된 절로 나온다.
흥천사가 있었던 강화군 양도면의 삼흥리(三興里)는 흥천(興川), 삼문(三門), 존강(存江)의 세 마을이 합친 것인데, 이 중 가장 큰 마을인 흥천은 그 이름이 흥천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현재 흥천사 절터에는 축대와 기와 조각 일부가 남아있다. 조선시대에 불교 탄압을 피해 산으로 은둔한 산중불교(山中佛敎)의 한 실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