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연화원 ( )

불교
유적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시대 왕실에 법화신앙이 유행하였을 당시 법화결사가 조직된 대표적 사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시대 왕실에 법화신앙이 유행하였을 당시 법화결사가 조직된 대표적 사찰.
개설

고려시대에 왕실을 중심으로 법화신앙(法華信仰)이 유행하였을 때 법화결사(法華結社)가 조직된 대표적 사찰이다.

역사적 변천

절의 창건주와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고려 때 개성의 낙타교(駱駝橋, 만부교)의 동쪽에 있었다고 한다. 폐사된 시기도 전하지 않는다.

내용

고려시대에 왕실의 후원으로 법화신앙이 크게 유행했을 때 개경에서는 보암사(寶巖寺)와 함께 연화원(蓮花院)이 법화결사를 조직한 대표적인 사찰이었다. 사찰 주변에 사는 청신사(淸信士)들이 결사를 조직하여 엿새마다(3, 14, 15, 23, 29, 30일) 모여서 『법화경(法華經)』을 돌아가며 읽으면서 공부하였다. 절에서 법화결사가 조직된 것은 경전의 뜻이 미묘하여 공부할수록 불법(佛法)을 깊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보암사의 결사에는 주로 60세가 넘은 퇴직 관료들이 모였지만, 연화원에서는 나이의 제한을 두지 않았다. 절 주변의 주민들이 모여서 경전을 읽고 극락왕생을 염불하였는데, 이러한 법화결사는 개경의 묘련사(妙蓮社)와 수원의 만의사(萬義寺) 등에서도 조직되었다.

의의와 평가

고려 말 결사를 통한 법화신앙의 유행을 잘 보여주는 사찰이다.

참고문헌

『해동전홍록(海東傳弘錄)』
『한국불교사연구』(안계현, 동화출판공사, 198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