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건국 초인 921년(태조 4)에 창건된 사찰로 개성시 방직동에 있는 보국사(輔國寺) 절터 인근에 있었다. 고려 후기인 1321년(충숙왕 8) 백관(百官)이 절에 행차한 기록이 있으며 고려 말 조선 초에 폐사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1321년(고려 충숙왕 8) 백관이 청운사(靑雲寺)에 행차여 충숙왕의 생모인 의비(懿妃)의 초상화를 가져다가 묘련사(妙蓮寺)에 안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의비는 충선왕의 제2비로 첫째인 세자 감(鑑)과 둘째인 충숙왕을 낳았다. 청운사에 의비의 초상화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 사찰이 일반 사찰이 아니라 왕실의 원찰(願刹)이었음을 말해준다. 한편 16세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청운사가 고적(古跡)의 조목에 기록되어 있는데 고려왕조의 멸망과 함께 폐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충숙왕의 생모 의비를 모신 고려 왕실의 원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