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이전에 창건된 사찰로 보이나 그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고려 초 왕사(王師) 경유(慶猷, 871~921)의 법경왕사보조혜광탑비(法鏡王師普照慧光塔碑)가 남아 있다. 비문에는 법경대사가 출가한 뒤 당에 건너가 운거도응(雲居道膺)의 법을 전하고 가지산문의 형미(逈微), 성주산문의 여엄(麗嚴), 수미산문의 이엄(利嚴)과 함께 해동의 사무외대사(四無畏大師)로 불리며 활동한 내용, 귀국한 후 궁예와 태조를 만나 왕사의 예우를 받다 입적한 생애가 기술되어 있다. 이 탑비는 고려 초인 944년(혜종 1)에 건립되었는데, 비문은 최언위가 짓고, 글씨는 승려 선경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오룡사는 조선시대에까지 존속하다가 1900년대 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태조의 왕사인 경유의 탑비가 세워진 사찰이었음을 고려해볼 때, 당시 절의 위상이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