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옛 경기도 장단군 오관산(五冠山)에 있었던 고려전기 에 창건된 사찰.
개설
내용
이처럼 흥성사는 고려말에 왕실의 신앙을 모은 중요 사찰이었기에 고승 백운경한(白雲景閑, 1298~1374)이 1357년(공민왕 6)에 이 절의 주지를 지냈고, 1388년(공양왕 즉위년)에는 당시 왕사이던 대지국사(大智國師) 찬영(粲英, 1328~1390)이 이 절에 주석하였다. 이후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전등사본말사지(傳燈本末寺誌)』에는 지금의 영통사가 흥성사의 옛터라고 하고, 또 1125년(인종 3)에 사액(賜額)하였다고 하였다. 흥성사는 영통사가 있을 때 동시에 존재했던 서로 다른 사찰인데, 두 절 모두 오관산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전승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목은문고(牧隱文藁)』
- 『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
- 『전등사본말사지(傳燈本末寺誌)』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 『한국사찰사전』(홍사성, 이화문화출판사, 1994)
- 『북한사찰연구』(사찰문화연구원, 사찰문화연구원 출판부, 1993)
- 『한국사찰전서』(권상로,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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