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량사(間良寺)는 백제 때인 598년(혜왕 1)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창건주나 창건 배경은 알 수 없고 고려시대까지의 연혁도 전하지 않는다. 조선 후기인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전(極樂殿), 시왕전(十王殿), 동전(東殿), 승방(僧房), 후방(後房), 일주문(一柱門) 등 여러 건물과 시설이 있다고 하였다. 이후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도 절이 존재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간량사는 19세기 중반에 폐사되었다고 한다. 민간에서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종 때 안동 김씨와의 묘지 문제로 다투다가 재판에 패하면서 절이 망했다고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현재 절터에는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간량리 당간지주와 석탑 부재가 남아있다. 당간지주는 기둥만 있고, 기둥 사이에 당간을 꽂던 받침돌은 없어졌다. 당간지주 옆에는 7매 정도의 장대석이 남아있다. 석탑 부재중에는 고려시대의 양식을 따른 옥신석이 포함되어 있어 고려시대에도 이 사찰이 유지되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19세기 중반까지 비교적 큰 규모로 그 사세를 유지했던 백제 때 창건된 고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