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천사 ()

불교
유적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의 제31대 의자왕의 동생 도천군이 창건한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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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의 제31대 의자왕의 동생 도천군이 창건한 사찰.
내용

도천사(道泉寺)는 백제 때 의자왕의 동생 도천군(道泉君)이 창건한 사찰이다. 사찰 명칭 역시 ‘도천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창건 이후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자세한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세종 때 정인지(鄭麟趾)가 절에 시전(施田)을 공양했고, 세조 때에는 기존의 가람 배치를 변경하여 새롭게 28방(房)을 설치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절이 소실되자 동서랑(東西廊)을 중건하였고, 약 40년 후에는 아암, 중암, 죽림암, 원적암 등 4개의 부속암자를 건립하였다.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도 절이 존재한 것으로 나오지만 폐사된 시기는 알 수 없다. 현재 도천사지는 1999년 부여군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1754년(영조 30)에 제작된 「도천사사적비(道泉寺事蹟碑)」를 통해서 절의 창건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비문에 따르면 의자왕의 동생인 도천군이 사비(泗沘) 서쪽의 천애산(天涯山)에 자신의 원당(願堂)을 삼을 목적으로 도천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비석은 옥개석과 비신, 귀부를 갖춘 형태로 높이 136cm, 너비 64cm, 두께 30cm이다. 비문의 글은 정언충(鄭彦忠, 1706∼1771)이 짓고, 정언필(鄭彥弼, 1711∼1760)이 썼다. 1999년 6월 부여군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도천사는 백제 왕실의 원당임이 규명된 사찰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참고문헌

「도천사사적비문(道泉寺事蹟碑文)」
『범우고(梵宇攷)』
부여군청(www.buyeo.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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