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련사(石蓮寺)의 창건에 관해서는 두 개의 설이 존재한다. 첫째는 백제 의자왕 때인 655년(의자왕 15)에 창건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통일신라 문성왕 때 무염(無染, 801∼888)이 창건하고 절의 이름을 산혜암(山惠庵)이라고 하였다는 설이다. 무염은 선종 9산문 중 성주산문(聖住山門)을 개창한 인물로 주로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두 가지 설 모두 문헌적으로 고증된 것은 아니기에 석련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과 『범우고(梵宇攷)』(1799년)에서는 절의 이름을 석령사(石鈴寺)라고 하였다. 이후 명칭이 석련사(石蓮寺)로 변경되었는데 언제 어떠한 이유에서 변경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석련사는 18세기 말에 폐사되었다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의 건물로는 대웅전과 법당, 요사 등이 있으며 대웅전에는 1922년에 제작된 현왕탱화(現王幀畵)가 봉안되어 있다. 석련사는 1993년 충청남도 전통사찰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修德寺)의 말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