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문성왕(839857) 때 인근 성주산문(聖住山門)을 개창한 무염(無染, 801888)선사가 창건하여 산혜암(山惠庵)이라 했다고 전한다. 절은 홍성읍 소재지의 서북쪽으로 약 3km 지점에 있는 표고 394m의 일월산(日月山, 일명 月山·白月山)의 동사면 중복에 있다. 16세기 중반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석령사(石鈴寺)’로 나오며, 1744년(영조 20) 간행본인 『홍주읍지(洪州邑誌)』 사찰조에는 “산혜암은 읍의 주산 청원당 북면 서쪽으로 10리에 있다(山惠庵在州北面西距十里邑之主山作廳院堂)”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절이 폐사되었다고 적고 있어 정조대 무렵에 폐사되었다가 다시 중창되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마곡사의 말사였으며, 김계장(金戒藏, 19121915), 장세완(張世完, 19151917), 지경운(池慶雲, 19181921), 이종환(李鍾煥,19181921), 박성전(朴成典, 1926~), 임홍근(林洪根, 1932), 오연택(吳蓮澤, 19361942) 등이 주지에 재임하였다. 1922년 대웅전에 현왕탱화를 조성하였고 1980년대에 불사를 하였다. 1993년 2월 3일 충청남도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현재 1985년에 새로 건축한 대웅전(정면 3칸, 측면 2칸)과 요사(정면 5칸, 측면 3칸)가 있으며, 석종형 부도 1기와 석조 약사보살입상(높이 215cm, 어깨 폭 56cm) 1구가 있다. 요사 남쪽에는 1982년에 세운 서경보 시비가 있고 요사 옆에는 돌절구(너비 70cm, 높이 56cm)가 남아 있다.
신라 하대 무염선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선종 산문의 문화를 간직한 사찰이다. 『한국사찰전서』에는 석련사(石蓮寺)의 원래 이름이 산혜암이었다고 적혀 있으나 『태고사사법(太古寺寺法)』이나 일제총독부의 관보에 따르면 대본산 마곡사의 말사로서 산혜암과 석련사가 각기 다른 사찰로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석련사는 산혜암과는 다른 절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