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상암(石床庵)은 선운사와 함께 백제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절 이름은 절의 서쪽 30m 정도 되는 곳에 있는 평상처럼 생긴 넓은 바위에서 유래하였다. 고려 중기에 수선사(修禪社) 제2세 법주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 1178∼1234)이 이곳에 주석하며 시를 남겼는데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에 수록된 「겨울 석상암에서(冬日寄石上庵)」라는 시이다. 그 내용은 “돌부리 솟아난 험한 길이 걷기조차 어려우니, 대지팡이 이 몸을 따르다가 도리어 넘어져 자빠졌네. 하물며 날 추워져 얼음에다 눈까지 잦으니, 응당 석상암에 사람들 찾아들지 않으리라(石頭路嶮足難措 竿木隨身猶躂倒 況須天寒氷雪多 故應石上無人到)”이다. 절의 중수 및 중창 사항은 「고창선운사사적기(高敞禪雲寺事蹟記)」와 「도솔산석상암상량문(兜率山石床庵上樑文)」을 참고할 수 있다. 석상암은 선운사의 부속 암자로 고려 말인 1318년(충숙왕 5)에 효종(孝宗)이 중수했고, 선운사를 중창했던 행호극유(幸浩克乳)가 조선 전기인 1474년(성종 5)에 중건했다. 이후 정유재란 때 전각이 소실되었으나 1604년(선조 37)에 중창하고 1614년(광해군 6) 일관과 원준 등이 선운사와 함께 중수했다. 1650년(효종 1) 보수한 후 1665년(현종 6)에 승려 학철(學哲)과 희안(希眼) 등이 중창했고, 1754년(영조 30)에는 칠성탱화를 조성해 봉안했다. 1950년대 이후 주지 최원주(崔元柱)가 칠성각을 신축하고 인법당을 수차례 중수했다. 2010년에는 법당을 신축했다. 사찰에 봉안된 칠성도와 산신도는 2014년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각기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