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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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인물
삼국시대 신라의 사신으로 당과 왜에 파견된 관리.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내용 요약

김다수는 삼국시대 7세기 중반 중국 당나라와 왜(倭)에 사신으로 파견된 신라 관리이다. 644년 당에 파견되어 신라와 당의 군사동맹에 대한 교섭을 하였고, 649년에는 왜에 파견되어 신라와 왜의 연계 강화를 위한 외교 교섭을 담당하였다.

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사신으로 당과 왜에 파견된 관리.
인적 사항

김다수(金多遂)는 생몰년 미상의 인물로, 그의 인적 사항이나 자세한 행적은 확인되지 않지만,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대와 진덕여왕(眞德女王) 대에 사신으로 당(唐)과 왜(倭)에 파견되어 신라의 대외 교섭 역할을 수행한 관리였다. 왕경 사탁부(沙啄部, 신라 때 경주 6부의 하나) 사람으로, 관등은 사찬(沙湌)이었다.

주요 활동

김다수는 당 고종(高宗) 현경(顯慶) 3년(658)에 황제의 명을 받들어 편찬된 시문총서(詩文叢書)인 『문관사림(文館詞林)』 권 664에 실린 「정관 연간에 신라왕을 위로하는 조서 1수〔貞觀年中撫慰新羅王詔一首〕」에 그가 나온다. 이 글에서 당 태종(太宗)은 고구려 정벌을 할 것이니, 신라도 이를 도울 것을 요청하고 있다.

조서는 645년(선덕여왕 14) 2월 12일보다 약간 앞선 시점에 작성되었는데, 작년 곧 644년에 신라 선덕여왕이 보낸 사신 김다수가 귀국할 때 보낸 황제의 새서(璽書) 내용과 같이, 수군을 동원해 고구려를 공격하고자 하니 신라도 합류하라는 내용이 있다. 이를 볼 때, 김다수는 644년 정월 정도에 당에 파견되었다가, 고구려 원정 계획을 담은 당 태종의 문서를 가지고 귀국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다수는 신라 사신으로 신라와 당의 군사동맹과 대고구려전 수행과 관련한 양국 간 교섭 역할을 하였다고 보인다.

김다수는 5년 뒤인 649년(진덕여왕 3) 왜에 파견되었다. 『일본서기(日本書紀)』 권 25 고토쿠〔孝德〕 천황 대화(大化) 5년(649) 시세(是歲)조에, 신라왕(진덕여왕)이 사탁부 사찬 김다수를 질(質)로 보내 왔다고 하였는데, 그는 종자(從者) 37명과 함께 왜에 갔다. 종자는 승려 1명, 시랑(侍郞) 2명, 승(丞) 1명, 중객(中客) 5명, 재기(才伎) 10명, 역어(譯語) 1명, 잡겸인(雜傔人) 16명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일본서기』에는 김다수가 질로서 왜에 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보다 2년 전인 647년에는 김춘추(金春秋)가 전년에 신라에 파견되었던 왜의 사신 고향현리(高向玄理)의 송사로 왜에 왔다가 질로 남았다는 기록도 있어서, 김다수의 파견을 김춘추를 대신하여 질이 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또 김춘추와 김다수가 질로서 왜에 머문 것을 약소국이 강대국에 보내는 인질로 이해하고, 이를 바로 왜와 신라 사이의 외교 형식상 상하 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아시아 고대의 질, 특히 삼국에서 왜에 파견된 것으로 기록된 질은 왕족이나 핵심 권력자의 경우가 많아서 단순히 인질로 볼 수 없다. 이들은 일정 기간 상대국에 머물면서 왕의 대리인으로 양국 간 주요 현안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외교관으로서의 성격이 강하였다. 따라서 김다수는 당에서와 마찬가지로, 신라와 왜 사이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교섭 임무를 수행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 백제와의 전쟁을 앞두고 신라는 왜와의 관계 개선과 연계 강화를 노리고 그 교섭 담당자로 김다수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왜에 파견된 이후 김다수의 행적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650년 2월 왜 조정이 연호를 백치(白雉)로 바꾸면서 거행한 의식에 고구려인, 백제인들과 함께 신라 시학사(侍學士) 등이 참석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김다수가 왜에 남아 있었다면 참석하였을 것이므로, 그는 그 이전에 신라로 돌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다수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던 중요한 기반 중 하나인 나당동맹(羅唐同盟)의 성사에 사신으로서 실무적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 신라-당-왜를 연결하는 외교 구상을 실현해야 하는 임무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원전

『문관사림(文館詞林)』
『일본서기(日本書紀)』

단행본

김현구 외, 『일본서기 한국관계기사 연구』 Ⅲ(일지사, 2004)

논문

이재석, 「『일본서기 대화 5년의 신라사 김다수에 관한 소고」(『동아시아 속의 한일관계사』 상, 제이앤씨, 2010)
주보돈, 「『문관사림』에 보이는 한국고대사 관련 외교문서」(『경북사학』 15, 경북사학회, 1992)
양기석, 「삼국시대 인질의 성격에 대하여」(『사학지』 15, 단국대학교사학회,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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