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타령 ()

고전시가
작품
1723년경에 남철이 지은 연정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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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1723년경에 남철이 지은 연정가사.
구성 및 형식

1723년(경종 3)경에 도사(都事)와 참판(參判)을 지낸 남철이 소년 시절 옥선(玉禪)이라는 여승을 사모하여 지은 연정가사이다. 고려대학교 소장본 『악부(樂府)』에 수록되어 전한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위항 시인인 추재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의 『추재집(秋齋集)』에는 자신의 경험을 직접 기록한 7언 절구의 한시 「삼첩승가(三疊僧歌)」와 그 시서(詩序)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를 토대로 가사 「승가」의 실존 여부와 작자 및 창작 연대를 추론할 수 있다. 「삼첩승가」는 실존 인물이 지은 총 5작품(1첩 「승가타령」, 2첩 「송여승가」와 「승답사」, 3첩 「재송여승가」와 「여승재답사」)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연작 가사이다.

내용

「승가타령」은 「송여승가」와 「승답사」의 일부 구절과 동일한 내용과 문답, 대화로 이루어진 서간체 형식으로 되어 있다.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총97행인데, 남 참판이 젊었을 때, 길에서 우연히 만나 동행한 여승에게 연정을 품고 자신의 사랑을 받아달라고 하소연하는 내용의 장형 가사이다.

구성은 서사, 본사, 결사로 나뉘는데, 서사(1∼4행)에서는 소문난 여승의 미모를 한번 보기를 소원했는데, 길에서 우연히 만난 기쁨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며, 편지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적고 있다. 본사(5∼90행)에서는 세속의 여인과 승복을 입은 여승의 모습을 대조하여 여승을 회유하는가 하면, 이별 후에 겪는 사모의 마음, 괴로움, 꿈속 상봉 기원, 상사병에 시달리는 고통 등을 간절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답신을 당부하고 있다. 곧이어 이어진 여승의 답신에서는 불가에 귀의하기까지의 자신의 불행한 일생과 인간적인 욕망을 버린 지 오래라는 것, 편지를 받고 답서를 쓰기까지 혼란스러웠음을 밝힌다. 결국 자신의 성품을 볼 때, 남의 첩 노릇은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구애를 거절하며, 이어지는 결사(91∼97행)에서는 자신을 잊고 만세 태평을 누리라는 당부이다.

실존 인물들이 주고받은 연작 연정가사는 당대 민중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누려 후대 가집에 이본들이 실려 전하는데, 「승가타령」을 제외한 4작품이 실려 있는 『전가보장(傳家寶藏)』본은 여승이 남 참판의 구애를 받아들여 환속하는 것으로 추재 조수삼의 증언과 동일한 결말을 보인다는 점에서 사실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추재집(秋齋集)』(조수삼)
『악부(樂府)』(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전가보장(傳家寶藏)』(필사본)
『가사집(歌詞集)』
『한국 고시가의 연구』(이상보, 형설출판사, 1975)
「연정가사 「승가」의 실상 고찰」(김팔남, 『어문학』81, 한국어문학회, 2003)
「편지 왕래형 구애가사 연구」(김유경, 『연민학지』5, 연민학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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