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제화(金剛製靴)는 1954년에 창업자 고(故) 김동신이 서울 서대문구에 세운 금강제화산업사(金剛製靴産業社)를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금강제화산업사는 한국전쟁으로 소비재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던 시기에 국민에게 신발의 원활한 공급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최고가 아니라면 판매하지 않는다는 경영 철학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화기술연구소(製靴技術硏究所)를 만들었다. 2002년에 명칭이 변경된 ㈜금강은 ‘번영, 안정 그리고 도덕’이라는 경영 이념을 바탕으로 진정한 창의성과 진취성을 발휘하여 보다 풍요로운 삶을 실현하는 기업으로서 문화 발전과 보다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기업으로 인류에 공헌하는 ㈜금강이 되겠다는 포부를 내세우고 있다.
수제화(手製靴)가 대량 생산 물결을 타고 기성화(旣成靴)로 교체되는 시기, ㈜금강은 1954년 금강제화산업사로 출발해서 1969년 금강제화주식회사로 법인이 전환되어, 수출로 시장을 확대하였다. 1973년에는 젊은 고객을 사로잡기 위한 캐주얼 전문 브랜드인 랜드로버(LANDROVER)와 여성 핸드백과 남성 지갑 등을 선보이는 ‘브루노말리(BRUNOMAGLI)’를 론칭하였다. 그리고 수출이 늘어나자 1975년에는 미국 현지 법인(FINE INTERNATIONAL FOOTWEAR INC.), 1989년에는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P.T.MITRA-KUMKANG SHOE TECH)을 설립하였다. 1991년에는 금강제화 의류 사업부를 신설하였고, 1993년에는 한국제화 기술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2002년에 현재의 ㈜금강으로 사업자가 변경되었다. 2022년 현재, ㈜금강은 한국 산업의 브랜드파워(K-BPI) 24년 연속 1위, 국가고객만족도(NCSI) 19년 연속 1위를 차지하였다. ㈜금강의 주요 사업은 신발, 가방, 의류 등으로 토털 패션상품을 제조해서 판매하고 있다.
금강제화는 1950년대 한국전쟁 후, 소비재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시기에 창립되어 국민의 수요에 대응하는 충분한 공급과 튼튼한 품질로 명성을 쌓았다. 당시의 한국 제화 산업은 수작업에 의존하는 생산 방식이 대부분이어서 대량 생산을 통한 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금강제화는 제화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각종 피혁(皮革)이나 창굽재 개발, 우레탄, 고무 등 화학적 공정에 대해서 연구하고 과감한 투자를 하였으며 신발 제작 방식을 모두 기계화하여 대량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1960년에는 근대식 기계 설비를 도입하여 본격적으로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국민 구두’라는 별명의 국산 기성화 1호인 ‘리갈 001’을 출시하였다. 대량 생산과 기술 축적을 통해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금강제화는 1960년대 후반부터 수출로 시장을 확대하였다. 당시 수출은 일본과 미국을 대상으로 총생산량의 70~80%를 수출하였으며, 수출이 늘자 미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대양을 설립하였다.
1980년대에 금강제화는 토털 패션의 개념을 도입하며 의류뿐 아니라 핸드백을 비롯한 패션 소품 등 전 패션 관련 업종으로 사업을 확장시켰다. 1990년대는 주력 업종에 내실을 기하면서도 의류 부서를 신설하는 한편, 신세대를 겨냥한 브랜드를 다각화하는 등 통합 패션 사업을 강화시킴과 동시에 한국 최초로 제화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금강제화 품질관리팀으로 편입해 족형 개발, 패턴 그레이딩, 3D 시뮬레이션 등 R&D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금강제화는 2002년에 ㈜금강으로 사업자를 변경하고 ‘번영, 안정, 도덕’이라는 세 가지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창의성과 진취성을 발휘하여 풍요로운 삶을 실현하는 기업으로서 문화의 발전과 보다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기업으로 인류에 공헌하고자 하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제품력 확보를 위해 아웃소싱(outsourcing)을 지양하고 제품의 95% 이상을 국내에서 직접 생산, 관리하고 있으며 주요 원자재를 모두 자체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것은 금강제화의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금강제화는 “한국인에게 딱 맞는 신발만이 소비자 만족을 이룰 수 있다.”라는 경영 철학으로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국내 1위 최장수 제화 기업(製靴企業)이다. 설립 당시 수작업에 의존하던 제화 산업의 발전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통해 기계화 도입을 본격 추진하여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주문화(注文靴) 위주의 시장 체계를 기성화 시장으로 전환시켜 제화 산업이 현재와 같은 패션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뿐만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빠르게 읽고 토털 패션의 개념을 도입하였으며, 제화기술연구소를 설립하여 지속적인 기술 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음으로써 제화 산업을 단순한 소비재에서 고부가가치의 패션 사업으로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우리나라가 1990년대에 세계적인 신발 생산 국가로 부상하고 현재 세계 최대 패션 강국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