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竹紙)는 어린 대나무의 섬유로 만들며 주로 중국에서 생산되었던 종이이다. 북송의 소식(蘇軾)과 미불(米芾) 등의 문인이 서화에 즐겨 사용하여 강절(江浙) 지방의 죽지가 천하의 일품으로 칭송되었다. 중국에서는 모변지(毛邊紙)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나무 잎인 죽엽(竹葉), 대나무 껍질인 죽피(竹皮)를 닥나무와 볏짚, 쑥대 등의 섬유와 혼합하여 종이를 만들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죽지의 제조 방법은 명대(明代) 송응성(宋應星)의 『천공개물(天工開物)』과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수록된 「이운지(怡雲志)」의 죽지 만드는 법[造竹紙法]에 자세히 실려 있으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죽지를 제조하는 일은 남방의 복건성(福建省)에서만 단독으로 성행하였다. 대나무 중에는 죽순이 돋은 후 가지와 잎이 막 돋아나는 대나무가 가장 좋은 원료였다. 망종(양력 6월 6일경)에 산에 올라가 대나무를 베는데 5~7척 길이로 자른 뒤, 목판으로 잘 맞춰 만들어 놓은 연못에 물을 채우고 그 안에 자른 대나무를 담궈 둔다. 대나무를 담근 지 100일이 지나면 죽순을 싸고 있던 거친 껍질과 줄기의 푸른 껍질을 씻어내는데 이를 ‘살청(殺靑)’이라 한다. 그 다음 질이 좋은 석회를 물에 섞어 진흙처럼 만든 뒤 대나무와 함께 황통(楻桶)에 넣고 가마에 삶는다. 8일 동안 대를 충분히 삶은 뒤 불을 끄고 하루가 지나면 황통에서 대나무 섬유를 꺼내 맑은 물을 채운 연못에 넣어 깨끗이 씻는다.
대나무 섬유를 깨끗이 씻고 나면 잿물에 담갔다가 볏짚의 재를 고르게 깐 뒤 다시 가마에 넣는다. 통 안의 물이 끓어오르면 다른 통으로 옮겨 넣고 잿물을 붓고, 잿물이 식으면 끓여서 다시 붓는다. 이렇게 10여 일이 지나면 대나무 섬유가 부패해 냄새가 난다. 그러면 섬유를 절구통에 넣고 찧어 진흙 반죽처럼 되면 종이를 뜨는 지통(紙桶)에 쏟아 넣는다. 지통에 맑은 물을 부어 대나무 섬유보다 0.3척 정도 올라오게 하고, 떠낸 종이가 흰 색이 되도록 지약즙(紙藥汁)을 첨가한다. 가늘게 자른 대오리를 엮어 종이 뜨는 발을 만든다. 두 손으로 발틀을 잡아 물 속에 넣고 휘저어 대나무 섬유를 떠올려 발 속으로 들어오게 한다. 대나무 섬유가 발에 뜨면 발틀을 사방으로 기울여 물을 지통으로 흘려보낸다. 발을 뒤집어 종이를 널빤지 위에 떼어 놓기를 반복하여 첩첩이 쌓아 올린다. 수량이 차면 그 위를 널빤지로 눌러 수분을 말끔히 짜내어 말린다. 이후 흙벽돌을 쌓아 장작불로 충분히 데운 뒤 젖은 종이를 한 장씩 떼어내어 담 위에다 붙여 말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