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에, 왕실 및 관청에 납입하거나 중국에 보낸 예폐 물품에 포함된 희고 견고한 종이.
내용
조선 후기에 사물을 각 항목별로 정리한 『광재물보(廣才物譜)』에 의하면, 백추지(白硾紙)는 백면지(白面紙)이며 고려에서 난다고 기록된 바 있으며, 『양매시화(楊梅詩話)』에는 백추지는 매끄럽고 하얀 종이이며, 매우 견고하고 지면이 매끄럽다고 하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백면지는 견고하고 질기며 종이 표면이 매끄럽고 하얀 종이였음을 알 수 있다. 백면지의 생산지는 전라도 등지와 충청도 충주목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충주목 특산품 중의 하나로 백면지를 기록하였고, 『조선왕조실록』에는 백면지가 전라도 백성들의 요역으로 무겁다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백면지는 우리나라 왕실 및 관청과 중국에 정기적으로 납입되었다. 평소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상용지(常用紙)가 아니었고 보통 이상의 특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특히 예폐(禮幣)와 부의지(賻儀紙)로 중국에 보내졌으며, 이러한 용도로 사용된 것이 전체 생산량 중 가장 많은 비율을 보였다. 황제의 생일인 성절(聖節)의 하례 방물(方物), 금나라에 보내는 예폐 · 세폐에 반드시 포함된 물품이었다. 중국으로 보내졌던 용도 이외에도 1년에 2번 어전, 왕비전, 대비전 등에도 백면지가 사용되었으며, 세자궁이 강독 후 상격(賞格)으로 내리는 지물(紙物)로도 사용되었다. 또한 왕실과 각 관청에서도 의궤 제작 및 각 문서류 작성 등의 용도로 백면지가 사용되었으며, 『경세유표(經世遺表)』에 시권(試券)의 종이를 백면지를 사용하였다는 내용이 있어 한때 과거시험용 종이로도 백면지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 『광재물보(廣才物譜)』
- 『경세유표(經世遺表)』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양매시화(楊梅詩話)』
- 『일성록(日省錄)』
- 『조선왕조실록』
- 『탁지준절(度支準折)』
- 『천공개물(天工開物)』
논문
- 정선영, 「백면지에 관한 연구」(『서지학연구』 41, 한국서지학회, 2008)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