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책보(古鮮冊譜)』는 대한제국 당시 일본의 ‘서울[京城] 주재 조선공사 통역관’으로 내한한 일본인 마에마 교사쿠가 한국에 체류하는 20년 동안 수집한 조선 고서 및 각종 장서의 각각의 도서에 대하여 직접 조사하고 해제한 일대서목(一大書目)이다.
마에마 교사쿠[前問恭作] (1868~1942)는 1868년 1월 23일에 일본 대마도(對馬島) 이즈하라[嚴原]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다. 그는 1879년 1월에 중학교 진학 때부터 한국어를 배워 1880년에 ‘한어학 4급 증명서(韓語學 4級 證明書)’를 받았으며, 1881년 4월부터 한학부(韓學部)에서 전문적으로 조선어 습득에 매진한 후, 1891년 11월에 조선으로 건너와, 통역관 등의 몇몇 관직을 거쳤다. 1902년에는 서울의 일본공사관 이등통역관(二等通譯官)에 임명되었고, 조선총독부에서 1911년 3월까지 근무하다가 사임하고 도쿄로 돌아갔다. 마에마는 1891년부터 1911년까지 20년 동안 한국에 체류하며 한국의 고서(古書) 등을 수집하였다. 그 결과 『고선책보(古鮮冊譜)』와 『선책명제(鮮冊名題)』 등 한국 고서에 관한 종합적인 해설서를 남김으로써, 한국의 전적(典籍) 및 한국학 연구에 단초를 이룬 최초의 한국서지학(韓國書誌學) 전문가로 평가된다.
『고선책보(古鮮冊譜)』는 일본인 마에마 교사쿠가 통역관 등의 직책으로 한국에 20년간 체류하면서 한국의 고전적(古典籍)들을 지속적으로 방대하게 수집한 결과물이다. 1911년에 일본으로 귀국한 후, 그가 수집한 한국 고서 자료들을 다시 20여 년 동안 연구 · 정리함으로써, 방대한 작업 카드의 해제서목(解題書目) 원고를 완성하였다. 일본의 동양문고(東洋文庫)에서는 이 원고를 ‘3권 3책’으로 간행하였는데(1944(제1책), 1956(제2책), 1957(제3책)), 이 책이 바로 『고선책보』이다.
『고선책보』 3권 3책은 마에마 교사쿠가 한국에서 체류한 20년(1891~1911) 동안 수집한 한국 고서들을 저자가 직접 조사 · 연구한 과정의 결과이다. 마에마 교사쿠는 각각의 고서에 관하여 자기 연구를 위한 서지학적인 비망록(備忘錄), 즉 가로 12.5cm, 세로 7.5cm 정도의 카드를 일일이 손으로 써서 작성하였다. 이러한 카드들이 바로 이 책의 원고가 되었다. 즉, 마에마 교사쿠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한국 고서에 관한 작업 카드는 총 10,461장 분량에 달하며, 모두 일성록(日省錄)의 책상사를 잘라 만든 네 개의 상자에 나누어 담겨 있다.
『고선책보』 3권 3책 양장본은 마에마 교사쿠의 작업 카드를 일본어 50음순으로 책자화(冊子化)하여 간행한 것이다. 마에마 교사쿠의 사후 2년 뒤인 1944년 3월에 동양문고(東洋文庫)에서 제1책이 간행되었다. 그리고 제2책은 1956년에, 제3책은 1957년에 각각 동양문고에서 간행하였다.
『고선책보』 3권 3책은 ‘총 2,178면: 본문 2,031면, 사진 34매, 서(序) 7면, 예언(例言) 7면, 부록(편자소전, 발문) 20면’에 이른다. 전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도서에 대한 배열은 일본어 50음순으로 그 서명들을 일본어로 읽어서, 이른바 그 서명 발음의 ‘아이우에오’ 순의 차례대로 기재하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고선책보』의 서지기술법(書誌記述法)은 ‘①저자(著者), ②판종(版種), ③저자의 대요(大要), ④[마에마 교사쿠] 소견(所見), ⑤각판(刻板)일 경우 판본에 초록 작성, ⑥다른 서목(書目)에서 찾은 이본(異本) 기록’의 순서로 작성하고 있다.
『고선책보』에 수록된 한국 고서의 분량은, 표제(標題)로 내세운 것을 기준으로 하면, 해제(解題)가 붙은 것이 3,291종, 서목만 내세운 것이 4,064종으로 총 7,355종이고, 한 서목 아래에 배치된 이본은 약 24,998종으로 총 32,353종의 거질(巨帙)이다.
『고선책보』에 수록된 각각의 고서 배열의 순서는 일본어 50음순으로, 서명(書名)을 기재하는 차례로 되어 있다. 이 책의 분류 체계가 고서의 일반적인 분류 체계인 사부분류법(四部分類法)이 아니기 때문에 그 분류에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고선책보』에 기재된 고서의 서명들이 무려 7,355종에 이른다. 그가 일본인이었음을 염두에 둔다면, 자신이 직접 수집한 각각의 고서들을 식별하는 방법으로 이른바 사전체 목록(辭典體目錄)의 방법인 일본어 50음순으로 서명을 배열하는 방법이야말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에, 마에마 교사쿠가 1927년에 집필한 선책명제(鮮冊名題) 12권의 분류 기준은 ‘사기(史記), 의주(儀注), 정교(政敎), 지리(地理), 전기(傳記), 유문(儒門), 도석(道釋), 방술(方術), 문예(文藝)’ 등의 이른바 ‘마에마 교사쿠 나름의 독자적인 [대]주제별 분류’를 채택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1944년(昭和 19)에 동양문고가 간행한 『고선책보』는 마에마 교사쿠의 작업 방법을 존중하여 그대로 출판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고선책보』는 마에마 교사쿠의 한국 전적문화(典籍文化)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노력이 집대성된 결실이라고 평할 수 있다. 『고선책보』에서는 마에마 교사쿠가 20년간 수집한 한국 고서에 대하여 총 ‘7,482개 항목’으로 해제하고 정리함으로써, 한국 고서와 그 이본의 연구 및 구한말(舊韓末) 한국 고전적(古典籍)의 실태를 파악하고, 이후 해외로 유출되거나 분실된 문헌들의 행방을 추적하는 데 더없이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마에마 교사쿠는 이러한 방대하고도 세밀한 연구 작업을 개인의 힘으로 20여 년 동안 경이롭게 완수함으로써 한국서지학 연구의 지평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