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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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11세기 후기에, 고려 법상종 혜덕소현 왕사에 의하여 금산사 남쪽 구역에 설치된 기관.
유적/건물
건립 시기
1079년
소재지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광교원은 법상종(法相宗)의 혜덕소현(慧德韶顯) 왕사가 1079년에 김제 금산사(金山寺) 주지로 부임하면서 금산사 남쪽 구역에 설치한 기관으로, 대각국사 의천이 『신편제종교장총록』을 편찬하고 제종교장을 간행할 때, 속장경 및 유식학(唯識學) 장소(章疏)를 비롯한 경론 등을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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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11세기 후기에, 고려 법상종 혜덕소현 왕사에 의하여 금산사 남쪽 구역에 설치된 기관.
내용

금산사(金山寺)는 금산사 사적(金山寺史蹟)에 600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인 762~766년 사이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중창(重創)하여 대찰(大刹)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이후 유식학(唯識學)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는 법상종(法相宗: 瑜伽宗)의 근본 도량이 되었다. 고려 전기 법상종의 주요 사찰로는 ‘현화사, 숭교사, 해안사, 왕륜사, 금산사, 속리산사(현 법주사), 동화사, 법천사’ 등이 꼽힌다.

1079년 고려 초에 법상종의 대종사(大宗師)이자 왕사인 혜덕소현(慧德韶顯, 1038~1096)이 금산사 주지로 부임하면서, 금산사의 남쪽 구역에 광교원(廣敎院)을 설립하여 경전을 강독하는 한편 사경(寫經) · 인경(印經) 등 경전의 판각과 유포를 위한 간경장(刊經藏)의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금산사를 창건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도량(道場)으로 만들었다.

광교원은 설립 당시부터 불전 간행(佛典刊行)의 기능에 주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혜덕왕사진응탑비명(慧德王師眞應塔碑銘)에 의하면, 금산사 광교원에서는 소현대사가 1083년부터 1097년까지 당(唐) 법상종의 초조(初祖)이며, 유식학의 대가인 자은규기(慈恩窺基, 632~682)의 저작인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20권, 『아미타경통찬소(阿彌陀經通贊疏)』 2권, 『법화현찬(法華玄贊)』 10권 등을 비롯한 ‘유식학 계통의 장소(章疏) 32부 353권’을 교감(校勘) ·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그 중 1088년에 간행된 『아미타경통찬소』의 간기(刊記)에 의하면, 이 장소의 간행은 의천(義天, 1055~1101)의 홍원(洪願)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으니, 의천의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이 편찬되기 이전에 이미 그 장소들이 개판(開板)된 점은 특히 주목된다. 특히 광교원에서 간행된 위와 같은 유식론 계통의 장소들은 의천의 『신편제종교장총록』에서 모두 확인된다.

또한, 2004년 송광사(松廣寺) 사천왕상(四天王像)에서 발굴된 ‘속장경(續藏經: 諸宗敎藏) 13종 14권’ 중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왕호국반야경소법형초(仁王護國般若經疏法衡抄)』 6권이 발견되었다. 이 자료는 속장경의 조성 연대와 관련한 새로운 사료로 주목된다. 즉, 『인왕호국반야경소법형초』 권6 말미의 간기에 “海東金山寺廣敎院重彫汴京印本[遇]榮公所撰法衡抄六卷一部起自辛未(1091)閏八月六日至於壬申(1092)六月十日手畢流通 ...”이라 하여, “고려[海東] 금산사 광교원(廣敎院)에서는 송나라[汴京] 인본(印本)인 ‘우영(偶詠) 찬술(撰述) 『인왕호국반야경소법형초』 6권 1부’에 대한 판각(板刻, 重彫) 사업을 1091년 윤8월 6일에 일으켜서 1092년 6월 10일에 완료하여 (널리) 유통시켰다.”라는 기록이 명백하게 확인된다. 이에 따라 금산사 광교원에서는 11세기 말기에 의천의 『신편제종교장총록』에 수록된 장소(章疏)인 『인왕호국반야경소법형초』 6권도 간행되었음이 입증된다.

금산사 광교원은 대각국사 의천이 『신편제종교장총록』을 편찬하고 아울러 제종교장(諸宗敎藏: 續藏經)을 간행할 때, 유식학 계통을 비롯한 속장경의 장소들을 분담하여 판각(板刻)하고 간행한 곳이다. 이에 광교원은 속장경의 간행 기능을 수행하였던 기관이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현황

금산사는 혜덕소현 왕사 이후 도생(導生, ?~1112, 혜덕소현은 도생의 외숙) 승통(僧統)의 불사(佛事)가 이어지고, 고려 후기 원명해원(圓明海圓) 대사가 불사를 계속하여, 금산사 대가람(大伽藍)의 규모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금산사지(金山寺誌)』에 의하면, 임진왜란 이전의 금산사는 ‘대사구(大寺區: 큰절 지역), 봉천원(奉天院), 광교원(廣敎院)’의 3대 사역(寺域)으로 나뉘어 있었다. 총 86채의 당우(堂宇)가 임진왜란의 참화로 소실된 뒤 40년 만에 대사구 지역의 건물만 재건되고 광교원과 봉천원은 복구되지 못하였다.

의의 및 평가

금산사 광교원은 11세기 후기에 고려 법상종 혜덕소현 왕사에 의하여 금산사 남쪽 구역에 설치된 기관으로, 주로 경전의 판각과 유포를 위한 간경(刊經)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특히 광교원에서는 11세기 후기에 『성유식론술기』 20권 등 유식학 계통의 장소 32부 353권을 교정 ·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게다가 속장경 장소인 『인왕호국반야경소법형초』 6권 1부를 1092년에 금산사 광교원에서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명시된 고서가 출현함으로써, 금산사 광교원은 11세기 후기 당시에 속장경의 간행과 유포를 분담하였던 기관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금산사(金山寺) 「증시혜덕왕사진응지탑비명(贈諡慧德王師眞應之塔碑銘)」(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우영(遇榮), 『인왕호국반야경소법형초(仁王護國般若經疏法衡抄)』 6권(송광사 불서전시 도록(松廣寺佛書展示圖錄)(송광사 성보박물관, 2004)
의천(義天),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단행본

김영수, 『금산사지(金山寺誌)』
이능화,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신문관, 1918)
남권희, 『고려시대 기록문화 연구』(청주고인쇄박물관, 2002)
『송광사 불서전시 도록』(송광사 성보박물관, 2004)
천혜봉, 『한국서지학』(민음사, 2006)
집필자
김성수(청주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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