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인 ()

규장지보
규장지보
출판
개념
조선시대에, 내사본의 권두제 면에 날인된 보인.
내용 요약

내사인은 내사기(內賜記)의 내용을 보증하는 직인(職印)을 책의 첫 장인 권두제(卷頭題) 제1행의 상단에 날인(捺印)함으로써,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역할을 하는 도장이다. ‘내사인’까지 찍힌 도서는 수취인 가문의 영광과 명예가 되기 때문에, 해당 도서를 소중하게 보존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키워드
정의
조선시대에, 내사본의 권두제 면에 날인된 보인.
내용

내사인(內賜印)은 ‘선사지기(宣賜之記)’, ‘규장지보(奎章之寶)’ 등의 주1이 새겨진 직인(職印, 주2을 말한다(<사진 1> ‘규장지보’ 참조). 내사인은 앞표지의 속면(裏面)에 적히는 내사기(內賜記)를 보증하는 직인으로, 권두제(卷頭題)의 제1행 상단에 찍히는데,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보인(寶印) 역할을 한다.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필요한 서적을 간행할 때, 이 서적이 필요하다고 예상되는 특정 신하 또는 관청을 미리 지정하고, ‘임금이 그들에게 해당 서적을 주3’라는 내용을 ‘하사하는 책[下賜 書籍]’의 앞표지 뒷면에 묵서로 남긴 기록을 ‘내사기’라 한다. 이렇게 임금이 하사하는 책을 주4’ 또는 ‘반사본(頒賜本)’이라고 한다. 내사본은 일반적으로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 주5이 많고, 『어정규장전운(御定奎章全韻)』 같이 대규모로 간행하여 반사책은 목판 인쇄본도 있다.

내사인은 보통 내사기가 적힌 책장의 왼쪽 면, 즉 권두제가 인쇄된 면의 오른쪽 상단 본문 첫 행 첫 줄에 권두제에 겹쳐서 찍는다. 다만 그 첫 행의 첫째 글자가 “어정(御定)”, “어제(御製)” 등이 포함된 서문이나 권두제일 경우에는, 제1행은 피하고, 제2행의 첫 글자에 내사인의 우측 상단이 겹치도록 인장을 찍고 있음이 확인된다. 실제의 사례를 보면, 『향례합편(鄕禮合編)』 서책의 제1면, 제1행의 제1~2글자에 임금을 지칭하는 “어제”가 포함되어 있고, 제3행의 첫 글자가 ‘왕(王)’이라는 글자가 인쇄되어 있다. 이에 따라 “규장지보”라는 내사인을 찍을 때, 제1행부터 3행은 피하고, 제4행부터 9행에 걸쳐 그 상단에 “규장지보” 내사인을 날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삼봉집(三峯集)』의 경우, 앞표지 속면(裏面)에 기록되어 있는 내사기는 “嘉慶二年 六月 日/ 內賜舊抄 啟文臣洪仁浩鄕禮合編一/ 件/ 命除謝/ 恩/ ... 直提學 臣 李 (手決)”이라 하여, ‘1797년(嘉慶2年) 6월에, 초계문신(抄啟文臣, 조선 후기 규장각에서 특별교육과 연구과정을 밟던 문신) 홍인호(洪仁浩, 1753~1799)에게 향례합편(鄕禮合編) 1건을 내사함. 명제사은(命除謝恩, 임금님의 은총에 별도의 감사 표하지 말 것을 명함), [내사 실무자] 직제학(直提學) 신(臣) 이(李) 수결(手決)’이라는 내용이다. 여기에서도 임금과 관련이 되는 ‘內’, ‘命’, ‘恩’ 글자는 독립된 행의 첫 글자로 올려 씀으로써, 임금에 대한 공경을 표시하고 있다.

이러한 내사본 책을 하사받는 일은 본인은 물론 가문의 영광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리하여 홍인호의 후손 문중에서 이 책을 보존하고 독서할 때에는, 위 내사기에 쓰여진 ‘洪仁浩’라는 성명 위에 별도의 ‘덧 종이’를 붙여서, 자기 문중 조상님 성함에 대한 피휘(避諱)를 실행하고 있음도 아울러 파악할 수 있다.

역사

내사인의 유래는 『세종실록(世宗實錄)』 ‘1429년 3월 26일’ 조(條)에, “경연(經筵) 소장의 책에는 ‘경연’과 ‘내사’의 도장을 찍을 것을 [임금께] 주청하니, 그대로 따랐다.”라는 기록에서 확인된다. 이때부터 내사인이 찍혀졌다고 볼 수 있다. 그 실제의 사례로, 1429년 8월에 인출된 경자자본(庚子字本) 『서산선생 진문충공 문장정종(西山先生眞文忠公文章正宗)』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세로 3.7㎝, 가로 1.9㎝’의 조그마한 약식(略式) 보인(寶印)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 ‘5㎝ 방’의 정식 ‘선사지기’가 찍힌 내사인은 1447년 10월에 반사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목판본과 1448년 11월에 반사된 『동국정운(東國正韻)』 금속활자본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앞표지 안쪽 면[裏面]에 내사기가 쓰여진 것은 언제부터인지 자세하지 않으나, 16세기 이후 반사된 책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내사기의 형식은 개인과 단체에 따라 다소 다르다.

종류

내사인의 종류에는 “규장지보”를 비롯하여 “선사지기”, “동문지보(同文之寶)”, “흠문지보(欽文之寶)”, “선홍단보(宣貺端輔)” 등의 보인이 있다.

의의 및 평가

내사인은 내사기의 내용을 보증하는 직인으로써, 권수 제1행의 상단에 날인하여,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내사인’까지 찍힌 도서는 주6 가문의 영광과 명예가 되기 때문에, 해당 도서를 소중하게 보존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참고문헌

원전

『향례 합편(鄕禮合編: 御製養老務農頒行小學五倫行實鄕飮酒禮鄕約綸音)』, 전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본.

단행본

서지학개론 편찬위원회, 『서지학 개론』(한울 아카데미, 2004)
천혜봉, 『한국서지학』(민음사, 1997)

기타 자료

「직제학(直提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석
주1

도장을 찍은 형적. 우리말샘

주2

직무상 쓰는 도장. 공무원이나 회사원들의 직위 명칭에 ‘인(印)’ 자를 붙인다. 우리말샘

주3

임금이 신하에게,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건을 줌. 우리말샘

주4

관아에서 간행한 책 가운데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한 책. 우리말샘

주5

금속 활자로 짜서 만든 인쇄용 판. 또는 그 판으로 찍어 낸 책. 일정한 글자본에 의해 주형을 만들어 주조하였기 때문에 글자 모양이 같고 정연하다. 우리말샘

주6

서류나 물건을 받는 사람.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김성수(청주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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