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단암리 일대 남한강변의 옛 포구로서 충청도 7개 고을의 조세곡을 수납하여 경창으로 운송하였던 조선 초기의 소규모 조창(漕倉)이다. 앙암의 조창 기능이 정확히 언제 폐지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인근의 소규모 조창인 이포창(梨浦倉)과 우만창(宇萬倉)의 기능이 1470년(성종 1)에 가흥창에 흡수될 때 앙암은 언급되지 않았다. 1465년 충주에 가흥창이 새로이 설치되자, 앙암의 조창 기능은 가흥창에 흡수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앙암은 포구로서의 기능만을 유지하였다.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단암리 일대 남한강변의 옛 포구로서 충청도 7개 고을의 조세곡을 수납하여 경창으로 운송하였던 조선 초기의 소규모 조창(漕倉).
개설
내용
조창과 수조처의 차이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사실상 동일한 기능을 수행한 곳이므로, 수조처 역시 조창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충청도 지역의 경우, 조창은 1곳도 기록하지 않고 수조처만 8곳을 기록하고 있다. 8곳 중 3곳은 아산만 지역에 위치하고, 앙암 등 5곳은 남한강 수계(水系)에 위치하였다. 앙암의 조창은 충주와 단양, 청풍, 괴산, 연풍, 제천, 영춘 등 충청도 7개 고을의 조세곡을 수납하여 경창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런데 충주 등 7개 고을의 조세곡은 앙암 이외에도 현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에 위치했던 금천창(金遷倉)에서도 수납하였다. 당시 7개 고을의 조세곡은 앙암과 금천(金遷) 두 곳으로 나누어 수납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앙암이 충주 관아 서쪽 60리에 위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앙암의 현 위치는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단암리 남한강변으로 비정된다. 조선 후기 이 지역에 앙암면(仰巖面)이 있었다. 현 앙성면은 조선 후기 앙암면과 복성동면(福城洞面)이 통합되어 만들어진 행정 단위이다.
변천과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한국사: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24(국사편찬위원회 편, 탐구당, 1994)
- 「고려~조선전기 조창(漕倉)의 분포와 입지」(정요근, 『한국사학보』 57, 고려사학회, 2014)
- 「조선 건국기 조운체제의 정비와 그 의미」(한정훈, 『진단학보』 120, 진단학회, 2014)
- 「여말 선초 조운제도의 연속과 변화」(문경호, 『지방사와 지방문화』 17-1, 역사문화학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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