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지연장주의는 일제강점기, 조선을 일본 본국의 연장으로 보아 본국과 같은 법령과 제도를 시행하려 한 식민 통치 방침 혹은 그 이념을 말한다. 일본의 의회·정당 세력이 군부 중심의 식민 권력을 통제하고 식민지인의 저항을 예방하기 위해 주장하였다. 조선에서 내지연장주의의 방침은 주로 1920년대 문화정치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내지연장주의의 시책도 조선인의 문명화·동화 정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실시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조선인에게 일본인과 동일한 권리를 달라는 친일 정치 세력의 참정권 획득 운동에는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
일본의 식민 통치 방침은 기본적으로 주1였지만, 식민 통치 방식에 대한 의견은 여러가지였다. 군부는 식민지에 군인 총독을 두고, 총독에게 입법권을 포함한 자율적인 통치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식민지인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진압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통치 방식이 대만과 조선 모두에 적용되었다. 반대로 의회 세력은 군부를 제국의회의 통제 아래 두고자, 식민지에도 일본 본토와 동일한 법령과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내지연장주의에 입각한 식민 통치 방식은 1920년대 대만과 조선에 적용되었다. 내지연장주의를 주장해온 하라 다카시[原敬]가 1918년 일본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하고, 1919년 조선 3·1운동 이후 군부 중심의 기존 통치 방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라 다카시는 1919년 신임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에게 「조선통치사견」을 통해 내지연장주의의 방침과 실행 방안을 제시하였다. 하라는 1910년대 조선 통치 방식은 서구의 식민지 제도를 모방한 것으로서, 근본부터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서구의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와는 달리 일본과 조선은 인종 · 언어 · 역사적으로 거의 동일하므로, 동일한 제도를 시행한다면 조선을 완전히 동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하라의 제안은 1920년대 주2의 일환으로 대개 실현되었다. 총독 무관제 폐지, 헌병 경찰 주3 폐지 및 보통 경찰 주4의 도입, 언론 · 집회 · 출판의 자유 일부 보장 등이 그것이다.
내지연장주의와 문화정치는 1920년대 친일 정치 세력의 참정권 획득 주5을 촉발시켰다. 국민협회는 조선에 중의원선거법을 시행해 조선인에게도 일본 국민으로서 똑같은 참정권을 부여해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내지연장주의의 시책도 조선인의 문명화 또는 동화 정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실시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지방제도를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정도에 그쳤다.
1920년대 내지연장주의와 문화정치는 일본의 의회 · 정당 세력이 국내 정치의 주도권을 잡은 후, 군부 중심의 식민 권력을 통제하고 3·1운동 같은 식민지인의 저항을 예방하기 위해 제시한 새로운 식민 통치 방식이었다. 내지연장주의에 부응하는 친일 정치 세력을 육성함으로써 민족 분열 통치[divide and rule][^6]를 꾀하였으나, 조선인을 일본인과 동등하게 대우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