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후부인은 일제강점기 전시 동원을 위한 여성상으로 후방에서 전쟁을 지원하는 여성을 일컫는 용어이다. 일제는 총동원의 기초 단위인 가정에서 주부가 국민의식을 가지고 국가적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하며, 총후부인에게는 첫째, 절약을 생활화해서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늘려 전비 조달에 이바지할 것, 둘째, 자녀를 많이 낳아서 국가에 노동력과 병력을 공급할 것을 선전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총후부인 담론은 가정을 국가의 통제 아래 두고 여성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조선의 가정부인이 그것을 받아들일 계기는 거의 없었다.
일제주1는 전시체제기 일본인과 주2민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하여 이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였다. 당시의 전쟁은 전선과 후방,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국가의 모든 수단을 전쟁에 동원하는 총력전이었다. 그 속에서 남성에게는 전쟁의 최전선에 배치되어 병사로 싸우는 청년의 자리가, 여성에게는 후방에서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국민으로 키우는 총후부인의 자리가 주어졌다.
일제가 여성을 총후의 가정을 지키는 존재로 표상한 이유는 가정이 총동원의 기초 단위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천황을 정점에 둔 가족국가를 표방하였고, 전시체제기에는 특히 서구의 개인주의에 대항하여 민족주의와 가족주의를 적극 옹호하였다. 가정이야말로 국민의 애국심을 길러내는 토대이고, 가정의 중심인 주부는 스스로 국민의식을 가지고 국가적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하였다.
총후부인에게 기대된 역할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가정의 생활 개선이었다. 일제는 전시 물자 부족의 원인을 조선 주부들의 비효율적인 가정 살림 탓으로 돌리고, 총후부인이라면 절약을 생활화해서 생활비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늘려서 전비 조달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선전하였다. 그와 동시에 부인 단체를 조직하고, 후방의 생산력 증대를 위하여 여성을 공동작업, 근로봉사에 동원하였다. 근검절약하고 인내심도 강한 총후부인은 부덕(婦德)을 갖춘 동양 여성으로 칭송하고, 그와 반대로 신여성은 서구식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에 빠져서 사치하는 여성으로 비판하였다.
둘째는 자녀의 출산과 양육이었다. 일제는 총후부인이 자녀를 많이 낳아서 국가에 노동력과 병력을 공급해야 한다고 선전하였다. 건강한 자녀를 출산하기 위해서는 어머니도 건강해야 했다. 또한 1938년 지원병 주3, 1944년 징병 주4의 실시로 조선인도 군인으로 동원되기 시작하자, 일제는 조선의 어머니는 천황을 위해 자식을 기꺼이 전쟁터에 내보내는 일본 어머니의 강인함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들을 훌륭한 군인으로 키운 어머니를 특별히 '군국의 어머니'로 칭송하면서도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어머니로 묘사함으로써 여성의 전쟁 협력을 부추겼다.
일제는 가정을 국가의 통제 아래 두고 여성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총후부인 담론을 유포하였다. 그러나 실제 조선의 가정부인이 총후부인의 사명을 스스로 받아들일 만한 계기는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