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문보감』은 1930년 근암 송재규가 집필한 여성교육서이다. 「녀계」, 「녀훈」, 「간찰서식」으로 구성되었는데, 기본적으로 조선시대 여훈서의 내용과 형식을 계승하였다. 가족 관계 속에서 여성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지켜야 할 행동거지를 기술하고, 1920년대 후반의 유행을 반영하여 가족 사이에서 주고 받을 만한 한글 편지 양식을 추가하였다. 송재규의 『규문보감』은 일제강점기 성리학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반동적 움직임에서 저술, 간행되었던 여훈서 종류 서적 중 하나이고, 실제로 은진 송씨 가문의 여성 교육에 활용되었다.
근암 송재규(19001932)는 은진 송씨 우암 송시열의 11세손이다. 할아버지 심석재 송병순(宋秉珣, 18391912)과 그의 형 연재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은 조선 말기의 대학자이면서 일본의 대한제국 국권 침탈에 항의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러한 명문 양반 가문에서 송재규는 전통적인 유학자로 성장하였으나, 그와 동시에 신문물도 받아들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규문보감(閨門寶鑑)』은 송재규가 1930년에 한글로 집필한 여성교육서이다. 「녀계(女戒)」, 「녀훈(女訓)」, 「 간찰서식(簡札書式)」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녀계」와 「녀훈」은 모두 가족 중심의 인간 관계 속에서 여성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지켜야 할 행동거지를 기술했는데, 「녀훈」은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이 저술한 조선시대 여훈서 「한씨부훈(韓氏婦訓)」을 번역한 것이다. 「녀계」에서는 부인의 마음가짐, 부인의 다섯가지 덕, 시부모 섬기는 도리, 남편에 대한 도리, 형제에 대한 도리, 동서에 대한 도리, 자손 가르치는 도리, 첩을 거느리는 도리, 주1 다루는 도리, 주2에 대한 도리, 주3에 대한 도리, 가정을 이루는 도리, 곤궁함을 당하였을 때 도리 등 13개 항목을 제시하였다. 이는 조선시대 여훈서의 내용과 형식을 계승한 것이다. 다만 뒤에 여성이 사용할 만한 편지의 양식을 수록한 것은 1920년대 후반에 새롭게 유행한 여훈서의 형식이었다. 『규문보감』의 「간찰서식」에는 일상생활에서 예의를 갖춰 보내야 하는 26가지의 한글 편지 양식이 수록되었다.
현재 『규문보감』의 원본은 소재가 불분명하며, 송재규의 주4 송필호가 소장하고 있는 원본 필사본[1956년]과 송충호가 문충사에서 출판한 간행본[1975년]이 전해진다. 원본 필사본과 달리 간행본에서는 첩에 대한 항목이 삭제되었고, 비복에 대한 기술에서 '비복'이라는 용어는 ' 가정부'로 대체되었다. 송충호가 간행본 출판 당시의 시대 상황에 맞도록 부분 수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여훈서는 유교 이념을 담은 여성교육서로서 주로 사대부 남성이 자기 가문의 여성을 교화하고 관리할 목적에서 서술하였다. 20세기 들어 여성의 학교 교육 및 사회 활동이 본격화되었음에도 여훈서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인쇄술과 출판 시장의 발달에 힘입어 활발히 편찬, 보급되었다. 이는 새로운 젠더 질서에 맞서 성리학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반동적 움직임이었다. 송재규의 『규문보감』도 「간찰서식」을 추가하는 등 새로운 형식을 취하였으나, 내용면에서는 여성을 가정 내 존재로 규정하고 성리학적 행동 규범을 제시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