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한제국기 『독서만집』, 『학문삼요』, 『사레축식』 등을 저술한 문신. 지사.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94년(고종 31)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찾아오는 손님도 만나지 않는 등 칩거하였다. 동학군이 봉기하자 향약을 보급하여 향인을 교화했으며,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내려지자 자정(自靖)의 생활로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데만 전념하였다.
1903년 학행이 뛰어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망을 받아 고종이 홍문관서연관(弘文館書筵官)에 임명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 그 뒤 영동군 학산면 활산에 강당을 세우고 많은 문인들을 지도 · 계발하여 천리를 밝히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정력을 기울였다.
1905년 형 송병선이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을 파기하기 위해 활동하다 순국하였음을 듣고, 옳은 길을 지켜 죽을 때라고 “은산철벽에 불타 버리지 않는 것은 오직 옥(玉)이다.”며 구국활동을 결심하였다. 그 해 11월 「토오적문(討五賊文)」을 지어 전국의 유림에게 배포하며, 민족정기를 드높이고 국권을 회복할 것을 호소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나라를 위하는 충성과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순국하는 길밖에 없다.” 하고 그 해 9월 5일 강당 위 서산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 투신자살하려고 하였다. 그 때 마침 문인 김용호(金龍浩)가 뒤에서 껴안아 실패하자, 그 뒤 두문불출하고 망국의 슬픔을 시로써 달래었다.
이 때 영동군 양산의 일본 헌병대가 은사금을 가져오자 이를 질책하여 거절하였다. 1912년 일제가 회유책으로 경학원(經學院) 강사에 임명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대의를 지켜 순국할 것을 결심, 유서를 남긴 뒤 독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저술활동
상훈과 추모
1973년 영동역 앞에 ‘순국의사심석재송선생병순지상(殉國義士心石齋宋先生秉珣之像)'이라 이름 붙여진 동상이 세워졌다. 1968년에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심석재집(心石齋集)』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한밭인물지』(대전직할시, 1993)
- 『독립유공자공훈록』(국가보훈처, 1986)
- 『기려수필』(송상도, 탐구당, 1974)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애국동지수호회, 195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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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은혜롭게 베풀어 준 돈이라는 뜻으로, 임금이나 상전이 내려 준 돈을 이르던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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