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은 1947년 4월 20일 『부녀신문』의 발행권을 이어받은 신문으로 황기성(黃基成)에 의해 창간되었다. 『부녀신문』은 1946년 5월 12일 우덕순(禹德淳)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창간한 신문으로 편집국장 박노아(朴露兒), 편집국 차장 노천명(盧天命) 등이 참여하였다. 해방 직후 발간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신문 중 가장 짧은 기간 동안 발행된 『부녀신문』은 총 14호가 발간되었다. 『부녀신문』을 계승한 『여성신문』 창간호는 제15호부터 시작하였다. 영문명은 THE LADIES DAILY였다.
『여성신문』은 "『여성신문』을 내면서"라는 글을 통해 『부녀신문』이 20일도 안되어 종간한 것은 여성계에 유감스러운 일이라 평하고 『부녀신문』의 대를 이어 여성 자신의 소리를 가져야겠다는 일념으로 신문 발간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여성신문』은 여성으로서의 교양에 힘쓰고, 여성 전체의 여론을 환기하고 통합하며 여성의 대변기관이 되겠다고 주1
신문 판형은 주2 2면판으로 발행되었다. 기사 내용은 대체로 1면에 사설, 외신 기사 및 정치 단체들의 입장 등 시사 내용 등이 많았고, 2면에는 경제, 사회, 문화 기사들과 여성계 소식, 여성 단체의 활동상, 생활 정보, 여성의식 계몽 관련 칼럼, 기획 기사, 독자 투고 내용 등을 실었다. 「여성의 소리」, 「부인문제」 라는 기획시리즈 코너와 「어찌하리까」라는 여성상담 코너, 「가정메모」라는 생활상식 코너 등을 통해 계몽 활동과 생활 정보 제공 뿐 아니라 여성의식의 고취를 꾀하고자 하였다.
『여성신문』은 초기에는 창간 준비의 부족으로 한달간 10일 간격으로 부정기적으로 발행되었다. 일간지로 발행되기 시작한 것은 1947년 5월 20일부터이다. 사무실은 서울시 을지로 2가에 있었으며, 월 구독료는 60원이었다. 창간 4개월 만인 1947년 8월 경에 종간되었다. 총 발행호수는 71호였다.
해방 직후 간행된 『여성신문』은 여성자신의 소리를 가져야겠다는 열의를 선언하며 여성 주3로서의 방향을 분명히 하였던 신문이라는 점에서 여성의 권익 향상과 관련한 폭 넓은 기사를 다루고 있어 해방 직후 여성계의 여성문제 해결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