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신문』은 여성의 정치 참여와 여성 계몽의 목적이 강했던 대한부인회의 기관지이자 일간지였다. 신문의 1면에는 정치 관련 기사를 게재하였고, 2면에 사회, 가정과 부인, 수필 등의 기고문을 실었다. 『부인신보』에 비해 여성에 대한 내용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성의 정치, 사회 진출과 새로운 여성상 확립에 대한 기사들이 많이 실렸다.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를 대비하여 여성의 국회 진출을 꾀하며 여성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에 대한 지원과 여성 유권자들에게 '여성은 여성에게'라는 선거 캠페인을 펼쳤다. 특히 대한부인회 소속 여성 후보자들에 대한 선거 홍보 지원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부인신문』은 여성 대상 일간지이자 대한부인회 기관지 역할을 담당하며 초기에 여성전문지에서 종합일간지로 그 성격이 변하였다. 『부인신문』은 대한부인회 조직을 이용하여 부산, 인천, 대구, 광주 등 지방에 지국을 두어 신문을 보급하였다. 월 구독료는 300원이었다. 신문의 변천과 관련하여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1950년의 한국전쟁이었다. 『부인신문』은 전쟁이 발발하고 며칠 안된 1950년 6월 27일 제902호로 발간이 중지되었다. 6월 27일 기사에는 「불법남침한 괴뢰군을 도처서 격파」, 「아군의 일부 해주시에 돌입」 등의 기사가 실렸다.
『부인신문』은 『부인신보』와 연계하여 살펴볼 때 해방 직후 발간된 신문 중 가장 긴 기간 동안 발행되었으며, 대한부인회 지방 지회를 활용하여 지방의 여성들에게도 보급된 일간지였다. 그리고 해당 시기 여성 단체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