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일보(婦女日報)』 는 1946년 3월 17일 발간되었다는 기록이 주1 공식적으로 1946년 7월 15일 출판허가 제234호를 받아 간행되기 시작하였다. 영문명은 The Lady Daily News 였다. 창간 목적은 일천오백만 여성의 계몽과 권익에 이바지하기 위함과 완전 독립을 전취하는 선봉대가 되기 위해 창간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부녀일보』는 창간 후 6호까지 발간한 후 한달 정도 휴간했다가 1946년 10월 23일 속간되었다. 「속간사」에는 좌우합작운동에 대한 기대감과 토지문제, 주2의 민선의원 선거 실시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속간 이후에도 부녀일보는 본사 기구 확장에 따른 사옥 이전과 본사 직영 공장 수리 관계 등의 이유로 매주 2회씩 주3
『부녀일보』를 이끌어갔던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1947년 1월을 기준으로 사장 구자권(具滋權), 부사장 안상희(安相禧), 편집국장 최석채(崔錫采), 총무국 차장 손창익(孫昌翼), 업무국 차장 석중파(昔重波), 공장장 오영식(吳永植) 등이었다.
1946년 1월 30일에는 일간지 발행에 대한 제반 준비와 그에 따른 편집 진용의 변화로 약 2주간 휴간하였다. 그리고 1947년 12월 24일 대구 지역에서 발간되는 신문과 통합하여 『대구합동신문』이 됨에 따라 『부녀일보』는 총 319호를 발행하고 종간되었다.
신문구독료는 월 백원이었다.
『부녀일보』는 대체로 주4 2면으로 발행되었는데, 1면에는 사설, 미군정의 정책을 비롯한 서울발 기사와 미소관계 및 국제 정세, 경상북도 및 대구 소식 등을 실었으며, 2면에는 여성 계몽을 목적으로 한 여성 관련 위생, 육아, 미용, 요리에 대한 정보 뿐 아니라 가정생활란이 있었다. 그리고 여성단체 활동의 소개, 수필, 시, 소설 등이 실렸다.
여성 관련 기사로는 1946년 10월 23일 사설에 「남녀동권에 대하여」라는 기사와 10월 31일 기사에는 「여성의 정치능력 시현(示現)-여대의원 수 등장」, 「안동군 대표에 최매지여사 피선」, 「최매지 여사 담」 등 많은 기사가 실렸다.
『부녀일보』는 해방 직후 지방에서 발간된 신문 중 유일하게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신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