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일보 (, The Lady Daily News)

현대사
문헌
1946년 7월 15일, 구자권이 대구에서 창간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일간지.
문헌/연속간행물
창간 연도
1946년 7월 15일
종간 연도
1947년 12월 24일
간행자
구자권
간행주기
일간지
총호수
319호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부녀일보』는 1946년 7월 15일 구자권이 대구에서 창간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일간지이다. 중도노선의 성격을 띠었다. 구자권이 사장겸 발행인이었고, 편집국장은 초기에는 최해룡, 후기에는 최석채 그리고 서석범으로 바뀌었다. 대구 지역에서 발행된 『부녀일보』는 일천오백만 여성의 계몽운동과 여성의 권익을 향상시키는데 분투 노력하기 위해 창간하였다고 밝혔다. 한달 정도 휴간 후 1946년 10월 23일 속간되었으며, 1947년 12월 24일 종간되었으며 총 발행 호수는 319호이다.

정의
1946년 7월 15일, 구자권이 대구에서 창간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일간지.
창간 경위

『부녀일보(婦女日報)』 는 1946년 3월 17일 발간되었다는 기록이 주1 공식적으로 1946년 7월 15일 출판허가 제234호를 받아 간행되기 시작하였다. 영문명은 The Lady Daily News 였다. 창간 목적은 일천오백만 여성의 계몽과 권익에 이바지하기 위함과 완전 독립을 전취하는 선봉대가 되기 위해 창간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변천 및 현황

『부녀일보』는 창간 후 6호까지 발간한 후 한달 정도 휴간했다가 1946년 10월 23일 속간되었다. 「속간사」에는 좌우합작운동에 대한 기대감과 토지문제, 주2의 민선의원 선거 실시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속간 이후에도 부녀일보는 본사 기구 확장에 따른 사옥 이전과 본사 직영 공장 수리 관계 등의 이유로 매주 2회씩 주3
『부녀일보』를 이끌어갔던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1947년 1월을 기준으로 사장 구자권(具滋權), 부사장 안상희(安相禧), 편집국장 최석채(崔錫采), 총무국 차장 손창익(孫昌翼), 업무국 차장 석중파(昔重波), 공장장 오영식(吳永植) 등이었다.
1946년 1월 30일에는 일간지 발행에 대한 제반 준비와 그에 따른 편집 진용의 변화로 약 2주간 휴간하였다. 그리고 1947년 12월 24일 대구 지역에서 발간되는 신문과 통합하여 『대구합동신문』이 됨에 따라 『부녀일보』는 총 319호를 발행하고 종간되었다.
신문구독료는 월 백원이었다.

구성과 내용

『부녀일보』는 대체로 주4 2면으로 발행되었는데, 1면에는 사설, 미군정의 정책을 비롯한 서울발 기사와 미소관계 및 국제 정세, 경상북도 및 대구 소식 등을 실었으며, 2면에는 여성 계몽을 목적으로 한 여성 관련 위생, 육아, 미용, 요리에 대한 정보 뿐 아니라 가정생활란이 있었다. 그리고 여성단체 활동의 소개, 수필, 시, 소설 등이 실렸다.
여성 관련 기사로는 1946년 10월 23일 사설에 「남녀동권에 대하여」라는 기사와 10월 31일 기사에는 「여성의 정치능력 시현(示現)-여대의원 수 등장」, 「안동군 대표에 최매지여사 피선」, 「최매지 여사 담」 등 많은 기사가 실렸다.

의의 및 평가

『부녀일보』는 해방 직후 지방에서 발간된 신문 중 유일하게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신문이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국언론연표 2: 1945-1950』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1987)

논문

박용규, 「미군정기의 여성신문과 여성운동」(『한국언론정보학보』 19, 한국언론정보학회, 2002)
윤덕영, 「해방 직후 신문자료 현황」(『역사와 현실』 16, 한국역사연구회, 1995)
주석
주1

「부녀일보(대구) 창간」(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총설DB :『대한민국사연표』)

주2

미군정 시대의 입법 기관. 1946년 12월 12일에 법령 118호에 의하여 민선·관선 의원을 각각 45명씩 총 90명을 뽑고 김규식을 의장으로 하여 개원하였다가 1948년 5월에 해산하였다. 우리말샘

주3

「사고(社告)」(『부녀일보』, 1946. 10. 31.)

주4

가로 254mm, 세로 374mm인 인쇄물의 규격. 신문지의 절반 크기이다. 우리말샘

집필자
김수자(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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