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단은 1945년 9월 7일 일본군 등에서 귀환한 제주 읍내 청년들이 민족반역행위를 한 친일파를 응징하고 스스로 질서를 찾자는 취지에서 설립하였다. 단장은 김태륜(金台崙)이었고, 부단장 김희석(金喜錫), 총무 김기오(金基五), 재무 고정옥(高正玉) 등이 주요 임원이었다. 한때 단원 수가 4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세력을 과시하였다. 사무실은 관덕정 남쪽에 있는 일본인 사찰을 사용하였다.
한라단이 결성된 후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주1에 협력한 인사들과 세도가들에 대한 응징이었다. 일제강점기 주2 실무를 맡았던 제주도청 노무계장 등이 한라단에 의해 집단구타를 당하였다. 또한 1945년 10월에는 귀환선을 구하지 못해 시모노세키[下關] 항에 발이 묶인 제주도 출신 노무자들을 돕기 위해 독지가들의 도움을 얻어 70톤 가량의 선박을 마련하고 205명의 노무자들을 실어날랐다.
그러나 한라단은 치안활동을 벌이던 중 건국준비위원회 및 인민위원회 산하 치안대와 부딪히는 일이 잦아졌다. 10월 초에는 한라단원들이 건국준비위원회 사무실을 습격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렇게 되자 치안대에서도 11월 5일 대원 약 175명이 한라단원들을 습격하였고, 한라단원들이 미군에 구원을 요청하면서 사건은 인민위원회와 미군의 충돌로 비화되었다. 미군이 군정경찰을 앞세워 인민위원회 사무실을 급습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열린 군정 재판에서 한라단원들은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치안대원 152명은 포고령 2호 위반으로 50원 또는 그 이상의 벌금형을 언도받았다.
이후 한라단은 인민위원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합동 교섭을 벌였다. 그러나 인민위원회 측이 '무조건 합동'을 주장해 협상은 결렬되었고, 얼마 후 한라단은 자연 해체되었다. 강대석(姜大錫), 김윤주(金允柱) 등 일부 단원은 인민위원회 청년동맹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