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당 ()

만화
단체
1950년대, 부산에서 딱지만화를 제작해 유통한 출판사.
단체
설립 시기
1950년대
설립자
이영근
소재지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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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산해당」은 1950년대 부산에서 딱지만화를 제작해 유통한 출판사이다. 대표는 이영근이다. 부산 동광동에 자리 잡은 인쇄소 겸 출판사로, 조악한 16페이지 짜리 딱지만화를 다수 제작해 좌판 등에 유통했다. 1952년 6월 서울시로 주소를 변경해 피난지 시절 유명세를 이용해 서울의 대다수 출판사가 ‘산해당’의 판권을 이용했다.

정의
1950년대, 부산에서 딱지만화를 제작해 유통한 출판사.
설립 목적

딱지만화를 유통하기 위해 만화 제작에 뛰어든 한국전쟁 초창기 피난지 부산의 출판사이다.

변천 및 현황

많은 청소년 작가를 고용해 딱지만화를 부산에 유통해 많은 인기를 끌었다. 산해당의 출판 등록 일자는 공식적으로 1952년 6월 18일이지만 부산 피난지에서는 훨씬 이전부터 영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주소지를 서울 용산구로 이전했다.

주요 활동

이후 작가와 출판사가 서울로 돌아가 활발하게 활동했을 당시에도 산해당이라는 익히 알려진 유명세로 많은 출판사들이 산해당 이름을 써서 유통했다

의의 및 평가

부산 피난지 만화의 만화사적 의의를 살펴보면, 첫째, 만화는 미술과 음악, 문학과는 궤를 달리한다. 프로나 기성작가들에 의해 명맥이 이어지는 일반적인 경향성과는 다르게 청소년 작가와 노점, 문방구, 서점으로 이어지는 자연발생적 만화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는 세계문화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사례이다. 프로작가들이 전쟁 홍보나 다른 생업에 종사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아동들의 즐길 거리 차원에서 시작한 조악한 노점 만화들이 하나의 산업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만화산업의 자발적 생태계가 구축되었다.

둘째, 피난지 만화는 2년 미만의 짧은 시기였지만 다양한 실험의 장이었다. 초기 일본만화 모작에서 벗어나 창작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었고 노점 위주에서 서점 만화나 전문 출판사와 유통까지 확대 재생산되었다. 셋째, 흔히 대중문화의 기본 필요충분조건인 여가가 아닌 곤궁하고 긴장된 피난지에서 문화가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역발상의 사례라 할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의 즐길 거리와 놀거리에 대한 욕구 충족을 넘어 1945년 해방 이후 이제 막 발화기에 접어든 만화문화의 연속성에도 기인한다고 하겠다. 만화는 당시 아이들에게 고단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콘텐츠였다.

마지막으로 전쟁 이후 부산의 작가, 출판사 등이 모두 한국 현대 만화계의 주축세력으로 성장한 것은 한국 현대 만화사적으로 의의가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史實)은 현대 만화사를 새로 쓸 만큼 중요한 사건이다. 부산의 만화생태계는 서울로 이식되었고 충분한 자양분이 되었다. 그리고 전쟁의 피난 지역에서 시작된 고질적인 저질만화 시비와 단속도 지속되었다. 이러한 점들이 한국 현대 만화사에서 피난지 '부산'이 갖는 중요한 의미이자 의의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윤기헌, 『한국만화사 구술채록 연구⑲ 박기준』(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19)
윤기헌, 『채록사건사 한국만화영상진흥원한국만화사 구술채록연구사업 ⑮ 합동과 소년한국도서』(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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