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주로 신문과 잡지에서 공모전이 시행되었다. 당시 『매일신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잡지 『동명』 등 근대 만화 초기부터 여론을 수집, 형성하거나 사세 확장을 위한 도구로 만화공모전이 이용되기도 했다.
신문과 잡지에 독자만화와 공모전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1920년대부터 신문들이 경쟁적으로 만화를 게재하면서 독자들에게 만화투고를 받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특히,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연재만화, 독자투고식의 고정란을 만들어 많은 만화가 게재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도 독자투고 형태의 양식은 종종 발견되는데, 『동아일보』의 경우 적극적으로 이를 도입했다. 『동아일보』는 간헐적으로 만화를 게재하다가 1923년 5월 25일 지령 1천 호를 기념해 시사만화를 현상공모하면서 다시 본격적으로 만화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1923년 9월 23일부터 1927년 10월까지 매주 일요일 6면에 신설된 독자 페이지에 한 칸 형태의 「시사만평」이 익명으로 게재되었다. 내용은 일제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만화들이 주로 차지했으며 특히, 주1 신문들이 채택한 독자만화 투고 방식은 근대 한국 언론에서 시작되어 현대 신문까지 꾸준히 이어져 온 전통이다.
해방 이후에도 1946년 12월 1일 동문사[발행인 김영석]가 만화 분야 ‘창작 현상공모’를 조선문학가동맹과 조선조형예술동맹 후원으로 개최하였고, 소년소설, 동화급 만화 부문으로 만화로는 가작 「호남이의 모험」 등이 선정되었다.
1973년에는 『한국일보』가 제1회 신인 만화 현상모집을 실시해 허영만의 「집을 찾아서」가 선정되었다. 1975년에도 제2회 신인 만화 현상모집이 시행되어 신영식의 「승리의 그날」과 김수정, 김동화[김정의]가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