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현은 삽화체 만화를 통해 서사극화 장르를 개척한 만화가이다. 회화를 전공하고 도안사로 일하다가, 1948년 「쌍칼」과 「푸른망토」로 데뷔하였다. 사극과 첩보 만화를 주로 그렸으며, 삽화체 만화를 통해 서사극화 장르를 개척하였다. 1960년대 만화의 장르 분화를 본격화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1970년대에는 후반기 대표작인 「임꺽정」을 발표하였다. 그의 작품은 사실적이고 화려한 그림체가 특징이며, 텍스트와 이미지의 균형 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백성민, 박기당, 김종래, 손의성, 서봉재 등 많은 후배 작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1928년생이다. 별도의 필명 없이 본명으로 30년간 작품 활동을 이어갔으며, 1978년 후두암으로 사망하였다.
회화를 전공하고 도안사로 일하다가, 1948년 「쌍칼」과 「푸른망토」로 만화계에 데뷔하였다. 1950년에는 「최후의 밀사」를 출간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고, 한국전쟁 중에는 종군 화가단과 미술대에서 활동하며 만화 전단을 제작하였다. 1956년에는 『만화 소년소녀』 창간에 참여하여 「바보온달」 등의 사극 작품을 연재하였다. 이 시기부터 박광현은 사실적이고 화려한 그림체를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1957년경에는 한국만화가협회[또는 대한만화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만화계에서 대외 활동도 펼쳤다.
1960년대는 박광현의 전성기였다. 이 시기에 그는 만화의 장르 분화를 본격화하며 한국 만화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숙향전」, 「백호검사」, 「그림자 없는 복수」 등의 대표작을 통해 사극, 첩보물, 미스터리 추리물 등 다양한 장르를 개척하였다. 특히 삽화체 만화를 통한 서사극화 장르의 개척은 그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로 평가된다. 1970년대에 들어서며 박광현은 후반기 대표작인 「임꺽정」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 역시 그의 뛰어난 필력과 사실적 그림체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박광현의 작품은 텍스트와 이미지의 균형 있는 구성이 특징이며, 이는 당시 한국 만화의 장르 분화와 만화의 표현 기법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사실적이고 화려한 고전극화풍의 그림체,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작품 세계, 그리고 텍스트와 이미지의 균형 있는 구성은 백성민, 박기당, 김종래, 손의성, 서봉재, 방학기, 서정철 등 많은 후배 작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박광현은 동료 작가들과의 협업에도 적극적이었다. 특히 박기당과는 1956년 『만화 소년소녀』 창간에 함께 참여하였고, 1961년에는 「엽전 열닷냥」이라는 작품을 협업[박기당 글, 박광현 그림]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