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갑자사화"
검색결과 총 25건
연산군은 조선시대 제10대 국왕이다. 1483년(성종 14년) 2월 7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다. 12년간 재위하면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지나친 연회·사냥·음행 등 폭정을 자행하다가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다.
연산군 (燕山君)
연산군은 조선시대 제10대 국왕이다. 1483년(성종 14년) 2월 7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다. 12년간 재위하면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지나친 연회·사냥·음행 등 폭정을 자행하다가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다.
사화는 조선 전기 조신 및 선비들이 정치적 반대파에게 몰려 참혹한 화를 입은 정치적 사건이다. 발생한 해의 간지를 따라 1498년(연산군 4)의 무오사화, 1504년(연산군 10)의 갑자사화, 1519년(중종 14)의 기묘사화, 1545년(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로 불린다. 1970년대 이후 현대 한국사 연구에서는 ‘훈구파(勳舊派)’가 ‘사림파(士林派)’를 탄압한 사건으로 평가해 왔으며, 1990년대부터는 대간(臺諫)의 활동과 위상 변화에 초점을 맞춰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사화 (士禍)
사화는 조선 전기 조신 및 선비들이 정치적 반대파에게 몰려 참혹한 화를 입은 정치적 사건이다. 발생한 해의 간지를 따라 1498년(연산군 4)의 무오사화, 1504년(연산군 10)의 갑자사화, 1519년(중종 14)의 기묘사화, 1545년(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로 불린다. 1970년대 이후 현대 한국사 연구에서는 ‘훈구파(勳舊派)’가 ‘사림파(士林派)’를 탄압한 사건으로 평가해 왔으며, 1990년대부터는 대간(臺諫)의 활동과 위상 변화에 초점을 맞춰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성현은 조선 전기 『허백당집』, 『악학궤범』, 『용재총화』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문인이다. 중국 사신을 접대할 정도로 시에 뛰어났다. 오랫동안 관직에 종사하며 홍문관 대제학에 올라 당대의 문장을 담당하였다. 문학뿐만 아니라 아니라 음악에도 뛰어났다.
성현 (成俔)
성현은 조선 전기 『허백당집』, 『악학궤범』, 『용재총화』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문인이다. 중국 사신을 접대할 정도로 시에 뛰어났다. 오랫동안 관직에 종사하며 홍문관 대제학에 올라 당대의 문장을 담당하였다. 문학뿐만 아니라 아니라 음악에도 뛰어났다.
조선 전기에, 이조참의, 우부승지,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성준 (成俊)
조선 전기에, 이조참의, 우부승지,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김종직의 문인으로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갑자사화로 7부자가 함께 처형된 종실.
이총 (李摠)
조선 전기에, 김종직의 문인으로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갑자사화로 7부자가 함께 처형된 종실.
조선 전기에, 경기도관찰사,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심회 (沈澮)
조선 전기에, 경기도관찰사,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이주 (李胄)
조선 전기에, 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한훈은 조선 전기 언관으로 활동하다 화를 당한 문신 관료이다. 한확과 소혜왕후의 인척으로서 1494년(성종 25) 별시에 입격하였다. 연산군 즉위 후 사간원 정언에 제수된 뒤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무오사화 당시 소릉 복위를 논한 것이 문제가 되어 유배되었다.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사형된 뒤 부관참시되었다.
한훈 (韓訓)
한훈은 조선 전기 언관으로 활동하다 화를 당한 문신 관료이다. 한확과 소혜왕후의 인척으로서 1494년(성종 25) 별시에 입격하였다. 연산군 즉위 후 사간원 정언에 제수된 뒤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무오사화 당시 소릉 복위를 논한 것이 문제가 되어 유배되었다.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사형된 뒤 부관참시되었다.
조선 전기에, 예문관검열, 홍문관부수찬, 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수정 (李守貞)
조선 전기에, 예문관검열, 홍문관부수찬, 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정완은 조선 전기 중종 대 천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가 대간직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아버지가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영천으로 유배되었으나 중종 즉위 후 방면되었다. 이후 재행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천거를 통해 관직에 임용되었다. 천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갔지만, 대간직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하지만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직첩이 회수되었다가 병사한 이후 돌려받았다.
정완 (鄭浣)
정완은 조선 전기 중종 대 천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가 대간직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아버지가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영천으로 유배되었으나 중종 즉위 후 방면되었다. 이후 재행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천거를 통해 관직에 임용되었다. 천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갔지만, 대간직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하지만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직첩이 회수되었다가 병사한 이후 돌려받았다.
조선 전기에, 형조좌랑, 사복시부정, 통례원우통례 등을 역임한 문신.
윤석 (尹晳)
조선 전기에, 형조좌랑, 사복시부정, 통례원우통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예문관검열, 춘추관사관 등을 역임한 문신.
성중엄 (成重淹)
조선 전기에, 예문관검열, 춘추관사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제주목사, 함경남도절도사,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방유령 (方有寧)
조선 전기에, 제주목사, 함경남도절도사,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공조좌랑, 사헌부지평, 홍문관전한 등을 역임한 문신.
성세명 (成世明)
조선 전기에, 공조좌랑, 사헌부지평, 홍문관전한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홍문관부교리, 예문관응교, 양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유자한 (柳自漢)
조선 전기에, 홍문관부교리, 예문관응교, 양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의 제7대 왕, 세조의 아들 덕종의 사위로, 도총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유배생활을 하다가 중종반정 이후에 녹훈된 종실·공신.
홍상 (洪常)
조선의 제7대 왕, 세조의 아들 덕종의 사위로, 도총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유배생활을 하다가 중종반정 이후에 녹훈된 종실·공신.
조선 전기에, 사간, 좌부승지, 좌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홍식 (洪湜)
조선 전기에, 사간, 좌부승지, 좌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형조참의 · 부제학 ·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소영 (朴召榮)
조선 전기에 형조참의 · 부제학 ·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홍문관전적, 시강원필선 등을 역임한 문신.
이수형 (李守亨)
조선 전기에, 홍문관전적, 시강원필선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사도시주부, 익위사익찬, 공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성경온 (成景溫)
조선 전기에, 사도시주부, 익위사익찬, 공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