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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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박씨는 조선 전기 제11대 국왕 중종(中宗) 후궁이다. 중종 반정 후 숙의(淑儀)에 봉작되었으며, 중종의 서장자(庶長子) 복성군(福城君) 이미(李嵋)를 낳았다. ‘작서의 변’으로 폐서인이 되고, 사사(賜死)되었다.
경빈 박씨 (敬嬪 朴氏)
경빈박씨는 조선 전기 제11대 국왕 중종(中宗) 후궁이다. 중종 반정 후 숙의(淑儀)에 봉작되었으며, 중종의 서장자(庶長子) 복성군(福城君) 이미(李嵋)를 낳았다. ‘작서의 변’으로 폐서인이 되고, 사사(賜死)되었다.
조선전기 제11대 중종의 첫째 아들.
복성군 (福城君)
조선전기 제11대 중종의 첫째 아들.
조선전기 가작인두지변(假作人頭之變) 사건과 관련된 관리.
이은석 (李銀石)
조선전기 가작인두지변(假作人頭之變) 사건과 관련된 관리.
조선 전기에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김식의 아들로 사면된 이후 후학 양성에 힘쓴 학자이다. 기묘사화 이후 부친의 망명으로 추국령이 내려지자, 동생 김덕순과 함께 행적을 감추고 지내다가, 1538년(중종 33) 신원(伸寃)된 뒤 집으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윤근수(尹根壽, 1537∼1616) 등 많은 명사들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1552년(명종 7) 향년 53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부친 김식이 도학에 있어서 조광조와 쌍벽을 이룰 만큼 명성이 높았는데, 그 역시 부친으로부터 도학에 대한 수준 높은 소양을 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덕수 (金德秀)
조선 전기에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김식의 아들로 사면된 이후 후학 양성에 힘쓴 학자이다. 기묘사화 이후 부친의 망명으로 추국령이 내려지자, 동생 김덕순과 함께 행적을 감추고 지내다가, 1538년(중종 33) 신원(伸寃)된 뒤 집으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윤근수(尹根壽, 1537∼1616) 등 많은 명사들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1552년(명종 7) 향년 53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부친 김식이 도학에 있어서 조광조와 쌍벽을 이룰 만큼 명성이 높았는데, 그 역시 부친으로부터 도학에 대한 수준 높은 소양을 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