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 제11대 국왕 중종의 후궁.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생애
1515년(중종 10) 장경왕후가 원자(후의 인종)를 출산하고 산후병으로 7일 만에 승하하였다. 경빈박씨는 중종의 총애를 받고 있었고, 복성군은 원자보다 여섯 살 위였다. 그때까지 계비(繼妃)는 후궁에서 뽑아 승차하는 방법으로 정하였고, 장경왕후 또한 그렇게 왕비가 되었기 때문에 경빈박씨는 자신이 왕비가 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정광필(鄭光弼)을 위시한 신하들이 계비를 간택할 것을 청하였고, 결국 1517년(중종 12) 파평윤씨 윤지임(尹之任)의 딸이 간택되었다. 이분이 문정왕후(文定王后)이다. 계비의 간택으로 경빈박씨는 왕비가, 복성군은 세자가 될 수 있었던 기대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데 1527년(중종 22) 세자의 생일에 사지를 찢어 불에 태운 쥐〔灼鼠〕를 세자 침실 창문 밖에 매달았던 이른바 ‘작서의 변(灼鼠之變)’이 발생하였다. 이 때 경빈박씨는 세자를 저주(咀呪)한 이 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지목되어 폐서인(廢庶人)이 되고 복성군은 군호가 박탈되어 고향 상주에 유배되었다. 1532년에 이종익(李宗翼)은 진범이 김안로(金安老)의 아들 김희(金禧)라고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이미 김희는 병으로 죽은 후였다.
그리고 1533년(중종 28) 소위 ‘목패(木牌)의 변’ 혹은 ‘가작인두(假作人頭)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동궁의 빈청에서 세자와 왕비 등을 저주하는 글이 새겨진 사람의 머리 형상을 한 나무 인형이 발견된 것이었다. 이 때 혜정옹주의 남편 홍여(洪礪)가 범인으로 지목되었고, 경빈박씨와 복성군이 그 배후로 지목되어 경빈박씨는 사사되었고, 복성군은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사사(賜死)되었다. 이어 홍여도 고문을 받다 옥중에서 죽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중종실록(中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단행본
- 이미선, 『조선왕실의 후궁』(지식산업사, 2021)
- 지두환, 『중종대왕과 친인척』(역사문화, 2001)
논문
- 金燉, 「中宗代 ‘灼鼠의 變’과 政治的 陰謀의 성격」(『한국사연구』 119, 2002)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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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서출(庶出)의 맏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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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부친 : 중종실록60권, 1527년(중종 22) 12월 6일. "대간이 박수림 부자의 서용을 박빈의 족친으로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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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입궐 경위 : 『중종실록』 58권, 1527년(중종 22) 4월 26일. "대간의 건의에 따라 박씨의 일과 관련하여 홍서주·김헌윤을 체직하고, 박씨의 인척을 파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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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경빈박씨 소생 : 『인종실록』 1권, 1545년(인종 1) 1월 24일. "이조 참의 홍춘경이 지은 대행 대왕의 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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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상소 내용 : 『중종실록』 72권, 1532년(중종 27) 3월 20일. "김안로를 배척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밝힌 이종익의 옥중 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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