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도감(都監)과 같은 임시 관청 부서로 설치된 조직이면서 관직을 의미한다. 임시 기구 중 상대적으로 자주 설치된 도감은 필요에 따라 설치되었다가 폐지되는 과정을 겪는 임시 관청이었지만 그 중요성은 매우 컸다.
도감은 대체로 도청(都廳) · 3방(房) · 별공작(別工作)으로 조직되며 상층부에 해당하는 지휘부서였다. 도감의 상층부에는 도제조(都提調)와 제조(提調), 도청이 있었으며, 도감을 지휘하는 역할을 하였다. 제조와 도청을 도청부(都廳部)라고 하며, 그 아래 낭청부(郎廳部)에 소속된 낭청(郎廳)과 감조관(監造官)을 지휘하는 구조로 역할이 설정되어 있었다.
도청은 관청으로서 의미와 관직으로서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관청으로서는 제조와 도청이 근무를 하는 곳이며, 제조는 도청당상(都廳堂上), 도청은 도청낭청(都廳郎廳)을 지칭하는 관직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도청의 낭청을 도청이라고 불렀다.
제조는 국왕에게 보고할 사안이나 국왕의 명령을 도청에게 하달하였고, 도감의 중요 사안을 논의하는 역할을 하였다. 도청의 임무는 도청부의 업무를 책임지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도청은 삼사의 전현직 관료가 임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도청의 낭청, 곧 도청은 당상을 보좌하여 실무를 담당하며, 제조의 명을 받아 각방의 낭청을 통솔하고, 업무를 종합하는 역할을 하였다.
도청은 청요직의 인원이 주로 선발 대상이 되었다. 도청이 역임하던 관직은 홍문관 · 세자시강원 · 이조 · 사간원 · 성균관 · 의정부 · 사헌부 등 청요직 관서였다. 그리고 이들 관서의 참상관(叅上官)이 도청에 임용되었다. 그 외에도 사복시 · 장악원 · 종부시 · 봉상시 · 군자감의 실직 장관인 정(正)이 도청에 임용되었다.
도청은 도감의 업무를 실제 총괄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한 관서의 장을 역임하였거나 청요직의 직임을 담당한 인재들이 임용되었다. 이를 통해 도청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