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광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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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은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대한제국기에 신민회와 대한협회 등의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대한광복회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북간도에서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후 신민부를 조직하였으며, 민족유일당운동의 일환으로 혁신의회와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였다.
김좌진 (金佐鎭)
김좌진은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대한제국기에 신민회와 대한협회 등의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대한광복회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북간도에서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후 신민부를 조직하였으며, 민족유일당운동의 일환으로 혁신의회와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청년층을 대표하여 학교의 시위운동을 주도하였고, 해방 이후, 민의원, 자유당 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이갑성 (李甲成)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청년층을 대표하여 학교의 시위운동을 주도하였고, 해방 이후, 민의원, 자유당 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김한종 (金漢鍾)
일제강점기 때,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고 일본 고관 암살을 계획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권영만 (權寧萬)
일제강점기 때,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고 일본 고관 암살을 계획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곽경렬은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가을부터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김제 일대에서 6인의 동지와 함께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위원이라는 명의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는 일곱 차례의 활동을 펼쳤는데, 동지들이 체포되면서 은신해 있다가 뒤늦게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곽경렬 (郭京烈)
곽경렬은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가을부터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김제 일대에서 6인의 동지와 함께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위원이라는 명의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는 일곱 차례의 활동을 펼쳤는데, 동지들이 체포되면서 은신해 있다가 뒤늦게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일제강점기 때, 대한광복회에서 친일파를 처단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임봉주 (林鳳柱)
일제강점기 때, 대한광복회에서 친일파를 처단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광복회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 등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김재창 (金在昶)
일제강점기 때, 대한광복회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 등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광복회, 주비단 등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며 임시정부를 지원한 독립운동가.
이재환 (李載煥)
일제강점기 때, 광복회, 주비단 등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며 임시정부를 지원한 독립운동가.
이정희는 일제강점기 비밀결사 조선국권회복단, 대한광복회 등에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5년 비밀결사 단체인 조선국권회복단 조직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조선광복회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에는 고향 청도에서 온명학교를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이정희 (李庭禧)
이정희는 일제강점기 비밀결사 조선국권회복단, 대한광복회 등에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5년 비밀결사 단체인 조선국권회복단 조직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조선광복회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에는 고향 청도에서 온명학교를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이강훈은 일제강점기에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북만주의 신민부에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렀으며, 한족총엽합회에 가감하여 동포 청년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하였다. 상하이에서 무정부주의 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담하여 주중 일본 공사를 포살하려 하였던 육삼정 의거를 기획한 독립운동가이다.
이강훈 (李康勳)
이강훈은 일제강점기에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북만주의 신민부에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렀으며, 한족총엽합회에 가감하여 동포 청년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하였다. 상하이에서 무정부주의 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담하여 주중 일본 공사를 포살하려 하였던 육삼정 의거를 기획한 독립운동가이다.
신현규는 일제강점기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1920년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신민부에 가입하여 1926~1927년 경상북도 일대에서 한국인 유지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서울 종로경찰서에 수감 중 순국한 독립유공자이다.
신현규 (申鉉圭)
신현규는 일제강점기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1920년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신민부에 가입하여 1926~1927년 경상북도 일대에서 한국인 유지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서울 종로경찰서에 수감 중 순국한 독립유공자이다.
김상길은 일제강점기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이상호·서상교 등과 함께 독립운동 단체인 태극단을 결성하고, 관방국장과 군사부장의 직책을 담당하였다. 태극단은 항일 독립운동의 전개를 위해 동지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체력 단련과 군사학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공유하고자 노력하였다. 1943년 5월 조직의 실체가 일제 경찰에 의해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인천소년형무소에서 복역 중 1945년 8·15광복으로 출옥하였다.
김상길 (金相吉)
김상길은 일제강점기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이상호·서상교 등과 함께 독립운동 단체인 태극단을 결성하고, 관방국장과 군사부장의 직책을 담당하였다. 태극단은 항일 독립운동의 전개를 위해 동지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체력 단련과 군사학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공유하고자 노력하였다. 1943년 5월 조직의 실체가 일제 경찰에 의해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인천소년형무소에서 복역 중 1945년 8·15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서상교는 일제강점기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교내의 항일 비밀결사인 태극단의 결성에 참여하여 체육국장으로 활동하였다. 태극단은 동지 간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군사 지식을 공유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투쟁에 참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내부의 밀고로 조직의 실체가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인천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15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서상교 (徐尙敎)
서상교는 일제강점기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교내의 항일 비밀결사인 태극단의 결성에 참여하여 체육국장으로 활동하였다. 태극단은 동지 간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군사 지식을 공유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투쟁에 참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내부의 밀고로 조직의 실체가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인천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15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김우전은 192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일본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에 다니던 중, 일본군 학도병으로 동원되었다. 중국 전선에서 탈출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한미연합작전을 수행하였다. 광복 후 한국광복군동지회, 광복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 정신을 선양하는 데 힘썼다.
김우전 (金祐銓)
김우전은 192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일본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에 다니던 중, 일본군 학도병으로 동원되었다. 중국 전선에서 탈출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한미연합작전을 수행하였다. 광복 후 한국광복군동지회, 광복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 정신을 선양하는 데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