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비밀결사 조선국권회복단, 대한광복회 등에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조선국권회복단은 대구를 중심으로 주로 경상우도(慶尙右道) 지역의 중산층 이상의 혁신 유림들이 참여하여 사립 교육기관과 곡물상의 상업 조직을 통하여 독립군을 지원한 구국 경제활동 단체였다. 조선국권회복단은 1915년 7월 15일에 풍기(豊基)의 광복단(光復團)과 조직을 합쳐 독립군 양성과 군자금 모집, 그리고 무기 구입을 목적으로 한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로 발전하였다.
이정희는 대한광복회 고문으로 활동하다가 1918년 1월 대구의 광복회 조직이 노출되어 일제 경찰에 붙잡혔으나 증거불충분으로 10월에 석방되었다. 1920년에 고향인 청도군 매전면(梅田面) 온막동(溫幕洞)에 온명학원(溫明學院)을 설립하고 후진 양성에 주력하는 한편,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1921년 경상북도 초대 평의원(評議員)으로 당선된 후 임시정부 후원 단체인 의용단(義勇團)을 조직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펴다가 1922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계속하여 항일운동과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류시중·박병원·김희곤, 『국역 고등경찰요사』(도서출판 선인, 2010)
- 김승학, 『한국독립사』(독립문화사, 1965)
신문
- 『동아일보』(1922. 12. 30.)
- 『동아일보』(1922. 12. 23.)
- 『동아일보』(1922. 12. 20.)
- 『동아일보』(1922. 12. 17.)
- 『동아일보』(1922. 12. 12.)
판결문
- 예심종결결정서(공주지방법원, 1918. 10. 19.)
인터넷 자료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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