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익표(吳翼杓)는 1888년 6월 8일 충청도 공주목 동부면 옥룡동(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에서 태어났다. 공주 영명학교와 서울 감리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로 유학하였다.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에 재학 중 1918년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귀국하였다.
1919년 3 · 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공주에서 3월 12일과 3월 15일 만세 시위에 참가하고, 일본 경찰의 체포를 피하여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여 1919년 4월 7일 의정원 충청도 의원으로 선출되어 본격적인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5월 6일에는 제4회 임시의정원회에서 충청도 구급의연금 모집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19년 5월 4일에는 상하이한인청년회 내에 청년단을 조직하고 통신부장으로 선임되었으며, 임시정부 지원을 결정하기도 하였다. 1919년 8월에는 러시아 연해주 소왕영(蘇王營, 지금의 우수리스크)으로 이주하여 한민학교(韓民學校)에서 조직된 전국청년연합회에서 유영락(柳永樂)을 회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부회장으로 선출되어 항일운동을 계속하였다.
1919년 11월 15일 상하이에서 재건된 대한적십자 회원으로도 참여하였다. 그후 러시아에서 소성학교(蘇城學校)를 설립 운영하다가 1921년에 사망하였다.
1968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