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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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교안은 1901년 5월부터 한달 간 제주도에서 천주교회와 도민 사이에 벌어진 충돌 사건이다. 1899년에 첫 선교사를 제주도에 파견하여 공격적인 선교 활동을 펼치던 천주교회는 제주 지역 사회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의 세폐(稅弊)로 인해 큰 고통을 당하고 있던 도민들이 1901년 5월 대정에서 민회를 열어 제주성으로 진군하다가 천주교인들과 충돌하였고,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신축교안은 20세기 초반 조선에 들어온 서양 문화와 지역 사회의 충돌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신축교안 (辛丑敎案)
신축교안은 1901년 5월부터 한달 간 제주도에서 천주교회와 도민 사이에 벌어진 충돌 사건이다. 1899년에 첫 선교사를 제주도에 파견하여 공격적인 선교 활동을 펼치던 천주교회는 제주 지역 사회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의 세폐(稅弊)로 인해 큰 고통을 당하고 있던 도민들이 1901년 5월 대정에서 민회를 열어 제주성으로 진군하다가 천주교인들과 충돌하였고,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신축교안은 20세기 초반 조선에 들어온 서양 문화와 지역 사회의 충돌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대구교안(大邱敎案)은 1891년에 대구 지역에서 선교하던 프랑스 선교사 로베르(Robert, 金保祿)를 경상감사(慶尙監司)가 추방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조선 정부와 프랑스 공사관 사이의 외교적 분쟁으로 확대되었고, 선교사들에게 유리하게 해결되었다.
대구교안 (大邱敎案)
대구교안(大邱敎案)은 1891년에 대구 지역에서 선교하던 프랑스 선교사 로베르(Robert, 金保祿)를 경상감사(慶尙監司)가 추방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조선 정부와 프랑스 공사관 사이의 외교적 분쟁으로 확대되었고, 선교사들에게 유리하게 해결되었다.
교민조약(敎民條約)은 1899년 3월 10일에 대한제국 내부 지방국장 정준시가 교안의 해결을 위해 천주교회 주교 뮈텔에게 제시한 천주교 약정이다. 서문과 9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었고, 지방 관리와 신부가 준수해야 할 사항, 교안 해결을 위한 정부와 천주교회의 협력 등이 규정되었다.
교민조약 (敎民條約)
교민조약(敎民條約)은 1899년 3월 10일에 대한제국 내부 지방국장 정준시가 교안의 해결을 위해 천주교회 주교 뮈텔에게 제시한 천주교 약정이다. 서문과 9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었고, 지방 관리와 신부가 준수해야 할 사항, 교안 해결을 위한 정부와 천주교회의 협력 등이 규정되었다.
교민범법단속조례는 1904년 6월 3일 외부대신(外部大臣) 이하영(李夏榮)이 교안(敎案) 해결을 위해 프랑스 공사 서리 퐁트네(Fontenay, 馮道來)에게 제시한 천주교 약정(約定)이다. 서문과 8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었고, 한국 관리와 프랑스 선교사가 준수해야 할 사항이 규정되었다.
교민범법단속조례 (敎民犯法團束條例)
교민범법단속조례는 1904년 6월 3일 외부대신(外部大臣) 이하영(李夏榮)이 교안(敎案) 해결을 위해 프랑스 공사 서리 퐁트네(Fontenay, 馮道來)에게 제시한 천주교 약정(約定)이다. 서문과 8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었고, 한국 관리와 프랑스 선교사가 준수해야 할 사항이 규정되었다.
1903년 사핵사(查覈使) 이응익이 천주교인과 주민, 교회와 관청 사이에 일어난 충돌사건의 진상 조사 후 작성한 보고서. 천주교보고서.
해서사핵사보 (海西査覈使報)
1903년 사핵사(查覈使) 이응익이 천주교인과 주민, 교회와 관청 사이에 일어난 충돌사건의 진상 조사 후 작성한 보고서. 천주교보고서.
황사평 천주교 유적(黃沙坪 天主敎 遺蹟)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황사평(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기와5길 117-22)에 있는 천주교 성지이다. 신축교안(1901)에서 희생당한 천주교 신자들의 시신이 묻힌 매장지로 현재 천주교 성지로 조성되어 있다. 또한 일반 신자들을 위한 묘역과 납골당이 설치되어 있어 제주 지역 천주교 신자들의 추모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황사평 천주교 유적 (黃沙坪 天主敎 遺蹟)
황사평 천주교 유적(黃沙坪 天主敎 遺蹟)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황사평(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기와5길 117-22)에 있는 천주교 성지이다. 신축교안(1901)에서 희생당한 천주교 신자들의 시신이 묻힌 매장지로 현재 천주교 성지로 조성되어 있다. 또한 일반 신자들을 위한 묘역과 납골당이 설치되어 있어 제주 지역 천주교 신자들의 추모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