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국민대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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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삼은 1910년대에 만주에 망명하여 1920년대까지 서간도 독립운동 단체의 지도자로 활약하였던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 대한제국이 망하자 서간도로 망명하여 이회영 등과 함께 신흥학교를 설립하고 경학사를 결성하며 병영인 백서농장을 운영하는 활동을 펼쳤다. 한족회와 서로군정서, 통의부, 국민대표회의, 정의부 등 서간도의 대표적인 단체와 독립군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민족유일당운동에 뛰어들었으며, 항일 공작을 도모하다 발각되어 국내로 압송되고 옥고를 치르다 옥사하였다.
김동삼 (金東三)
김동삼은 1910년대에 만주에 망명하여 1920년대까지 서간도 독립운동 단체의 지도자로 활약하였던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 대한제국이 망하자 서간도로 망명하여 이회영 등과 함께 신흥학교를 설립하고 경학사를 결성하며 병영인 백서농장을 운영하는 활동을 펼쳤다. 한족회와 서로군정서, 통의부, 국민대표회의, 정의부 등 서간도의 대표적인 단체와 독립군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민족유일당운동에 뛰어들었으며, 항일 공작을 도모하다 발각되어 국내로 압송되고 옥고를 치르다 옥사하였다.
원세훈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함남 정평 출생으로 1906년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동만주로 망명하였다. 간도,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북경 등에서 조국광복 대의 설파, 새로운 독립운동기관 창설 등을 통해 일제와 맞섰다.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석하였다. 1950년 납북당했으며, 1959년 간첩죄로 숙청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원세훈 (元世勳)
원세훈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함남 정평 출생으로 1906년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동만주로 망명하였다. 간도,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북경 등에서 조국광복 대의 설파, 새로운 독립운동기관 창설 등을 통해 일제와 맞섰다.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석하였다. 1950년 납북당했으며, 1959년 간첩죄로 숙청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22년 5월에 결성되었던 국민대표대회 소집 추진단체.
국민대표대회주비위원회 (國民代表大會籌備委員會)
1922년 5월에 결성되었던 국민대표대회 소집 추진단체.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열단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다물단을 조직해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유우국 (柳佑國)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열단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다물단을 조직해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 헌법개정위원, 교육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유시언 (柳時彦)
일제강점기 때,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 헌법개정위원, 교육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한국동포연합회는 1922년 9월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에서 세계 각지의 한인 대표자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동아일보』의 기사를 제외한 다른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아 존재 자체가 의문시된다.
한국동포연합회 (韓國同胞聯合會)
한국동포연합회는 1922년 9월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에서 세계 각지의 한인 대표자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동아일보』의 기사를 제외한 다른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아 존재 자체가 의문시된다.
이기룡은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대한적십자사, 국민대표회의 등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3·1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1919년 7월 1일 상하이에서 재건된 대한적십자사, 시사책진회 등에 참여하였다.
이기룡 (李起龍)
이기룡은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대한적십자사, 국민대표회의 등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3·1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1919년 7월 1일 상하이에서 재건된 대한적십자사, 시사책진회 등에 참여하였다.
이웅해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독립단, 기원독립단 단장을 맡아 활동하였고, 독립단체 통합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통의부 간부로서 일제 밀정을 처단하였고, 조선 내 일제 관공서 파괴와 고관 암살 활동을 지휘하였다.
이웅해 (李雄海)
이웅해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독립단, 기원독립단 단장을 맡아 활동하였고, 독립단체 통합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통의부 간부로서 일제 밀정을 처단하였고, 조선 내 일제 관공서 파괴와 고관 암살 활동을 지휘하였다.
이진산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신흥무관학교를 후원하고, 한족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국민대표회의, 시사책진회, 중한호조사, 서로군정서, 정의부, 조선혁명자후원회 등 여러 독립 단체에 관계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이진산 (李震山)
이진산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신흥무관학교를 후원하고, 한족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국민대표회의, 시사책진회, 중한호조사, 서로군정서, 정의부, 조선혁명자후원회 등 여러 독립 단체에 관계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현정건은 일제강점기에 중국의 만주와 상하이 지역에서 대한민국임시의정원, 고려공산당, 인성학교, 국민대표회의, 상하이교민단, 상하이한인청년동맹, 한국유일당상해촉성회 등의 독립 단체와 사회단체 및 교육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현정건 (玄鼎健)
현정건은 일제강점기에 중국의 만주와 상하이 지역에서 대한민국임시의정원, 고려공산당, 인성학교, 국민대표회의, 상하이교민단, 상하이한인청년동맹, 한국유일당상해촉성회 등의 독립 단체와 사회단체 및 교육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채영은 일제강점기 만주로 망명하여 북간도 한인 단체인 간민회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였다. 1919년 중국 훈춘에서 무장조직 결사대를 결성하여 국내외 무장투쟁을 계획하는 한편, 혈성단을 조직하고 대한의용군에 참여하였다. 1921년 고려혁명군단에 참여하였다가 자유시참변 후 국민대표회의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채영 (蔡永)
채영은 일제강점기 만주로 망명하여 북간도 한인 단체인 간민회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였다. 1919년 중국 훈춘에서 무장조직 결사대를 결성하여 국내외 무장투쟁을 계획하는 한편, 혈성단을 조직하고 대한의용군에 참여하였다. 1921년 고려혁명군단에 참여하였다가 자유시참변 후 국민대표회의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백남준은 일제강점기 1912년 데라우치 마사타케 암살 미수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20년 광복군 총영에 입단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대한민국임시정부와의 연계 활동을 전개하였다. 통의부에 참여한 후 국민대표회의에 통의부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백남준 (白南俊)
백남준은 일제강점기 1912년 데라우치 마사타케 암살 미수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20년 광복군 총영에 입단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대한민국임시정부와의 연계 활동을 전개하였다. 통의부에 참여한 후 국민대표회의에 통의부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