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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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육촌은 삼한시대에 진한(辰韓)의 한 소국인 사로국(斯盧國)을 구성했던 6개의 촌락이다. 서벌6촌(徐伐六村)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알천양산촌·돌산고허촌·취산진지촌·무산대수촌·금산가리촌·명활산고야촌의 6개 촌이 있었다. 씨족적 취락으로서 6촌장이라는 족장 밑에 혈연과 지연으로 결합된 사회였다. 6촌이 변천하여 6부제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촌의 위치에 대해서는 경주와 경주평야 일대로 한정하는 견해와 지금의 경상남·북도 일원으로 확대하는 견해가 있다.
사로육촌 (斯盧六村)
사로육촌은 삼한시대에 진한(辰韓)의 한 소국인 사로국(斯盧國)을 구성했던 6개의 촌락이다. 서벌6촌(徐伐六村)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알천양산촌·돌산고허촌·취산진지촌·무산대수촌·금산가리촌·명활산고야촌의 6개 촌이 있었다. 씨족적 취락으로서 6촌장이라는 족장 밑에 혈연과 지연으로 결합된 사회였다. 6촌이 변천하여 6부제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촌의 위치에 대해서는 경주와 경주평야 일대로 한정하는 견해와 지금의 경상남·북도 일원으로 확대하는 견해가 있다.
조선시대 『난중잡록』, 『속잡록』 등을 저술한 의병장.
조경남 (趙慶男)
조선시대 『난중잡록』, 『속잡록』 등을 저술한 의병장.
영규(靈圭)는 임진왜란 당시 의승병을 일으켜 조헌(趙憲)의 의병과 함께 청주전투와 금산전투에 참전한 승장이다. 1592년 충청도에서 의승 800여 명을 모아 조헌의 700 의병과 함께 청주성에서 일본군을 물리쳤고 금산에서 전사했다. 영규가 참가한 이 전투들은 의승군의 충의와 기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영규 (靈圭)
영규(靈圭)는 임진왜란 당시 의승병을 일으켜 조헌(趙憲)의 의병과 함께 청주전투와 금산전투에 참전한 승장이다. 1592년 충청도에서 의승 800여 명을 모아 조헌의 700 의병과 함께 청주성에서 일본군을 물리쳤고 금산에서 전사했다. 영규가 참가한 이 전투들은 의승군의 충의와 기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김희철은 광해군의 후궁 공빈김씨의 아버지로 해령부원군(海寧府院君)에 봉해졌다.
김희철 (金希哲)
김희철은 광해군의 후궁 공빈김씨의 아버지로 해령부원군(海寧府院君)에 봉해졌다.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에 있는 해수욕장.
상주해수욕장 (尙州海水浴場)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에 있는 해수욕장.
조선 전기에, 개령현감, 금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권종 (權悰)
조선 전기에, 개령현감, 금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시대 수탄장, 행호군, 순천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오응정 (吳應鼎)
조선시대 수탄장, 행호군, 순천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전라남도 곡성 지역의 옛 지명.
옥과 (玉果)
전라남도 곡성 지역의 옛 지명.
해방 이후 조선불교중앙총무원 제1대 교정을 역임한 승려.
정호 (鼎鎬)
해방 이후 조선불교중앙총무원 제1대 교정을 역임한 승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산(母岳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진표가 창건한 암자. 금산사.
모악산 심원암 (母岳山 深源庵)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산(母岳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진표가 창건한 암자. 금산사.
삼국시대 배씨의 도시조인 금산가리촌의 지방세력가. 씨족장, 도시조.
지타 (只他)
삼국시대 배씨의 도시조인 금산가리촌의 지방세력가. 씨족장, 도시조.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상옥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금산중앙초등학교 (錦山中央初等學校)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상옥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 참전한 의병.
한응성 (韓應聖)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 참전한 의병.
김성원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 참전하여 순절한 사인(士人)이자 학자이다. 어려서부터 독실한 행실이 있었고, 크고 작은 일에 관계없이 조헌에게 물어 남다른 사랑을 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헌이 의병을 일으키자 그를 따라 금산전투에 참가하였다. 금산군의 서쪽 경계에서 적과 하루 종일 싸우다가 아군의 후원 세력이 없어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다. 뒷날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칠백의사총(七百義士塚)에 묻혔다.
김성원 (金聲遠)
김성원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 참전하여 순절한 사인(士人)이자 학자이다. 어려서부터 독실한 행실이 있었고, 크고 작은 일에 관계없이 조헌에게 물어 남다른 사랑을 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헌이 의병을 일으키자 그를 따라 금산전투에 참가하였다. 금산군의 서쪽 경계에서 적과 하루 종일 싸우다가 아군의 후원 세력이 없어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다. 뒷날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칠백의사총(七百義士塚)에 묻혔다.
조선 후기에, 교리, 이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민흥도 (閔興道)
조선 후기에, 교리, 이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근왕병 지원을 위해 의병을 모집하였으며, 금산전투에 참전한 의병.
이광륜 (李光輪)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근왕병 지원을 위해 의병을 모집하였으며, 금산전투에 참전한 의병.
충청남도 금산군에 속한 분지.
금산 분지 (錦山 盆地)
충청남도 금산군에 속한 분지.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 참전한 의병.
조완기 (趙完基)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 참전한 의병.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 참전한 문신.
오비 (吳玭)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 참전한 문신.
경상남도 남해 지역의 옛 지명.
난포 (蘭浦)
경상남도 남해 지역의 옛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