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기사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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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東人)에서 분파하였으며, 학문적으로는 이황(李滉)의 학통을 잇고, 지역적으로는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북도 지역과 서울·경기권을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던 조선시대 붕당(朋黨)의 한 정파.
남인 (南人)
동인(東人)에서 분파하였으며, 학문적으로는 이황(李滉)의 학통을 잇고, 지역적으로는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북도 지역과 서울·경기권을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던 조선시대 붕당(朋黨)의 한 정파.
조선 후기에, 홍문관저작, 충청도관찰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송상기 (宋相琦)
조선 후기에, 홍문관저작, 충청도관찰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임술삼고변은 1682년(숙종 8)에 경신환국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 김석주·김익훈 일파가 남인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함정 수사로 3건의 역모를 고발한 사건이다. 김석주는 남인들의 역모를 고발한 익명서가 나오자 김익훈 등을 통해 남인들을 감시하면서 함정 수사하여 증거를 수집하였다. 김환은 허영·허새를 김익훈은 유명견을 김중하는 민암 등을 역모로 고발하였다. 이 중 허영·허새는 역모를 자백하였으나 나머지 2건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밝혀졌다. 때문에 이 사건은 부도덕한 정치 공작으로 비판을 받았다. 기사환국 때 남인들의 보복이 이어졌다.
임술삼고변 (壬戌三告變)
임술삼고변은 1682년(숙종 8)에 경신환국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 김석주·김익훈 일파가 남인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함정 수사로 3건의 역모를 고발한 사건이다. 김석주는 남인들의 역모를 고발한 익명서가 나오자 김익훈 등을 통해 남인들을 감시하면서 함정 수사하여 증거를 수집하였다. 김환은 허영·허새를 김익훈은 유명견을 김중하는 민암 등을 역모로 고발하였다. 이 중 허영·허새는 역모를 자백하였으나 나머지 2건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밝혀졌다. 때문에 이 사건은 부도덕한 정치 공작으로 비판을 받았다. 기사환국 때 남인들의 보복이 이어졌다.
조선 후기에, 이조참의, 부제학,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송규렴 (宋奎濂)
조선 후기에, 이조참의, 부제학,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동지부사,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목내선 (睦來善)
조선 후기에, 동지부사,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1689년(숙종 15) 1월 숙종이 희빈 장씨 소생의 왕자를 원자로 호칭을 정하자, 송시열이 이를 부당한 것으로 비판한 사건.
원자정호 (元子定號)
1689년(숙종 15) 1월 숙종이 희빈 장씨 소생의 왕자를 원자로 호칭을 정하자, 송시열이 이를 부당한 것으로 비판한 사건.
조선 후기에, 순안현령, 배천군수, 황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신숙 (申潚)
조선 후기에, 순안현령, 배천군수, 황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평안도관찰사, 대사성,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신익상 (申翼相)
조선 후기에, 평안도관찰사, 대사성,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부평현감, 황주목사, 합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박태원 (朴泰遠)
조선 후기에, 부평현감, 황주목사, 합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강원도관찰사, 한성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신후재 (申厚載)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강원도관찰사, 한성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나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소두산 (蘇斗山)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나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문묘출향은 1689년(숙종 15) 3월 문묘에 배향되어 있던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위판을 문묘에서부터 축출하고 제사를 폐지한 사건이다. 1624년 서인이 이이와 성혼의 문묘 배향을 건의하였으나 남인은 이이가 불교에 빠진 전력과 성혼의 왜란 시 과오를 들어 반대하였다. 서인과 남인의 당론으로 논쟁이 지속되다가 1682년 김석주와 송시열이 주도하여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출향이 결정되었고 1694년 갑술환국으로 복향되었다. 문묘출향과 복향은 서인과 남인 간의 당쟁 향배와 추이를 같이 하였으며, 많은 정치 사회적 분란과 갈등을 유발하였다.
문묘출향 (文廟黜享)
문묘출향은 1689년(숙종 15) 3월 문묘에 배향되어 있던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위판을 문묘에서부터 축출하고 제사를 폐지한 사건이다. 1624년 서인이 이이와 성혼의 문묘 배향을 건의하였으나 남인은 이이가 불교에 빠진 전력과 성혼의 왜란 시 과오를 들어 반대하였다. 서인과 남인의 당론으로 논쟁이 지속되다가 1682년 김석주와 송시열이 주도하여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출향이 결정되었고 1694년 갑술환국으로 복향되었다. 문묘출향과 복향은 서인과 남인 간의 당쟁 향배와 추이를 같이 하였으며, 많은 정치 사회적 분란과 갈등을 유발하였다.
조선후기 함경도병마절도사, 황해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집 (李鏶)
조선후기 함경도병마절도사, 황해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 후기에, 경기도관찰사, 예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오정위 (吳挺緯)
조선 후기에, 경기도관찰사, 예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이조판서, 좌참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심재 (沈梓)
조선 후기에, 이조판서, 좌참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이조좌랑, 병조참지,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심권 (沈權)
조선 후기에, 이조좌랑, 병조참지,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대사간,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유명견 (柳命堅)
조선 후기에, 대사간,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형조참의, 우부승지,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박원도 (朴元度)
조선 후기에, 형조참의, 우부승지,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허경은 조선 후기에 승지와 경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종실 가문으로 인평대군의 손자 의원군 이혁이 생질이다. 숙종 때 생원시와 문과에 합격하였고, 홍문도당록에 오를 정도로 학문이 뛰어나 주강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관직으로는 3사의 요직을 거쳐 경주부윤, 강릉부사 등 주로 외직을 역임하였으나 중앙의 고위직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저술로는 시와 만사 등이 있다.
허경 (許熲)
허경은 조선 후기에 승지와 경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종실 가문으로 인평대군의 손자 의원군 이혁이 생질이다. 숙종 때 생원시와 문과에 합격하였고, 홍문도당록에 오를 정도로 학문이 뛰어나 주강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관직으로는 3사의 요직을 거쳐 경주부윤, 강릉부사 등 주로 외직을 역임하였으나 중앙의 고위직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저술로는 시와 만사 등이 있다.
조선 후기에, 영릉·희릉의 참봉을 역임하였으며, 신임사화와 정미환국으로 유배된 유생.
신구 (申球)
조선 후기에, 영릉·희릉의 참봉을 역임하였으며, 신임사화와 정미환국으로 유배된 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