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녹봉"
검색결과 총 12건
녹과전은 고려 후기에 녹봉(祿俸)을 보충할 목적으로 관리에게 나누어 주었던 토지이다. 고려 정부가 강도(江都)에 천도 중이던 1257년(고종 44)에 분전대록(分田代祿)의 원칙을 마련하고 개경으로 환도한 뒤 1272년(원종 13)에 시행한 제도이다. 제도의 취지는 녹봉을 대신하여 토지를 지급하는 것이었으며, 구체적으로는 경기 8현의 토지 가운데 양반조업전 외 반정을 혁파하여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녹과전은 고려 후기에 부족해진 녹봉을 보충하는 한편 유명무실해진 전시과를 대신하여 관인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녹과전 (祿科田)
녹과전은 고려 후기에 녹봉(祿俸)을 보충할 목적으로 관리에게 나누어 주었던 토지이다. 고려 정부가 강도(江都)에 천도 중이던 1257년(고종 44)에 분전대록(分田代祿)의 원칙을 마련하고 개경으로 환도한 뒤 1272년(원종 13)에 시행한 제도이다. 제도의 취지는 녹봉을 대신하여 토지를 지급하는 것이었으며, 구체적으로는 경기 8현의 토지 가운데 양반조업전 외 반정을 혁파하여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녹과전은 고려 후기에 부족해진 녹봉을 보충하는 한편 유명무실해진 전시과를 대신하여 관인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덕천고는 고려 후기 왕실의 재정을 관리하던 기관이다. 충렬왕대에 제국대장공주의 식읍에서 납부하는 곡식과 옷감을 관리한 것과 같은, 왕실의 사적인 재정을 담당했던 기관이다. 충선왕이 이를 물려받아 덕천창(德泉倉)이라고 부르다가 1325년(충숙왕 12)에 덕천고로 다시 고쳤다. 의성창(義成倉)과 함께 왕실의 사적 재정을 관리하는 기능을 하였으므로 사장(私藏)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덕천고 (德泉庫)
덕천고는 고려 후기 왕실의 재정을 관리하던 기관이다. 충렬왕대에 제국대장공주의 식읍에서 납부하는 곡식과 옷감을 관리한 것과 같은, 왕실의 사적인 재정을 담당했던 기관이다. 충선왕이 이를 물려받아 덕천창(德泉倉)이라고 부르다가 1325년(충숙왕 12)에 덕천고로 다시 고쳤다. 의성창(義成倉)과 함께 왕실의 사적 재정을 관리하는 기능을 하였으므로 사장(私藏)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고려 말기 공민왕의 복주(福州 :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파천 때 녹전의 출납 사무를 관장하던 임시관청.
녹전봉상색 (祿轉捧上色)
고려 말기 공민왕의 복주(福州 :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파천 때 녹전의 출납 사무를 관장하던 임시관청.
녹패는 녹봉을 받는 문무 관원, 군직체아·종친·공신·봉조하 등의 녹관들에게 녹봉 수령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내려주는 증서이다. 조선 초기에는 삼사에서 발급하다가 1466년(세조 12)부터 이조와 병조에서 문관과 무관을 나누어 발급하였다. 녹패를 받은 자는 고신을 지참하여 광흥창에 가서 녹봉을 수급할 수 있었다.
녹패 (祿牌)
녹패는 녹봉을 받는 문무 관원, 군직체아·종친·공신·봉조하 등의 녹관들에게 녹봉 수령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내려주는 증서이다. 조선 초기에는 삼사에서 발급하다가 1466년(세조 12)부터 이조와 병조에서 문관과 무관을 나누어 발급하였다. 녹패를 받은 자는 고신을 지참하여 광흥창에 가서 녹봉을 수급할 수 있었다.
광흥창은 고려 및 조선시대에 관료들의 녹봉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본래 좌창이었는데 1308년 충선왕이 정식 관리인 품관을 임명하여 공적으로 재정관청을 운영하기 위해 광흥창으로 개칭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어 모든 관리의 녹봉을 관리하는 관청이 되었으며, 『경국대전』에 정4품의 관청으로 등록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매년 1월과 7월에 녹봉을 지급하였는데, 조선시대에는 몇 차례 개편을 거쳐 매년 4번 지급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현재 서울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1번 출구 옆 공민왕사당 앞에 광흥창 터 표지가 있다.
광흥창 (廣興倉)
광흥창은 고려 및 조선시대에 관료들의 녹봉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본래 좌창이었는데 1308년 충선왕이 정식 관리인 품관을 임명하여 공적으로 재정관청을 운영하기 위해 광흥창으로 개칭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어 모든 관리의 녹봉을 관리하는 관청이 되었으며, 『경국대전』에 정4품의 관청으로 등록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매년 1월과 7월에 녹봉을 지급하였는데, 조선시대에는 몇 차례 개편을 거쳐 매년 4번 지급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현재 서울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1번 출구 옆 공민왕사당 앞에 광흥창 터 표지가 있다.
광흥창(廣興倉)은 조선시대에 관리의 녹봉을 관장하던 호조 소속 정4품 아문이다. 광흥창의 연원은 고려 말 좌창에서 찾을 수 있다. 광흥창의 규모는 점점 확대되어 1470년(성종 1)에는 풍저창의 강창을 합속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광흥창은 상당한 재원을 보유하였는데, 18세기 광흥창의 재원은 호조 내 8개 기관 중에서 3번째로 가장 많았다.
광흥창 (廣興倉)
광흥창(廣興倉)은 조선시대에 관리의 녹봉을 관장하던 호조 소속 정4품 아문이다. 광흥창의 연원은 고려 말 좌창에서 찾을 수 있다. 광흥창의 규모는 점점 확대되어 1470년(성종 1)에는 풍저창의 강창을 합속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광흥창은 상당한 재원을 보유하였는데, 18세기 광흥창의 재원은 호조 내 8개 기관 중에서 3번째로 가장 많았다.
고려시대 서경(西京)의 속관(屬官).
대창 (大倉)
고려시대 서경(西京)의 속관(屬官).
고려 후기에, 직제학, 개성윤,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김수 (金銖)
고려 후기에, 직제학, 개성윤,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신라시대의 관서.
우사록관 (右司祿館)
신라시대의 관서.
고려 전기 국용(國用)을 담당하였던 관청.
우창 (右倉)
고려 전기 국용(國用)을 담당하였던 관청.
고려시대 서경(西京 : 평양)의 속관.
정설원 (正設院)
고려시대 서경(西京 : 평양)의 속관.
신라시대의 관서.
좌사록관 (左司祿館)
신라시대의 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