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한민국애국부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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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혈성단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고,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총재 겸 재무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오현관 (吳玄觀)
일제강점기 때, 혈성단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고,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총재 겸 재무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혈성단애국부인회(血誠團愛國婦人會)는 1919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여성 독립운동단체이다.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 출신 여성들로 구성되었으며, 3 · 1운동으로 수감된 민족운동자들과 그 가족 및 유족들의 생활 구제를 목표로 하였다. 이후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大朝鮮獨立愛國婦人會)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를 결성하였다.
혈성단애국부인회 (血誠團愛國婦人會)
혈성단애국부인회(血誠團愛國婦人會)는 1919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여성 독립운동단체이다.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 출신 여성들로 구성되었으며, 3 · 1운동으로 수감된 민족운동자들과 그 가족 및 유족들의 생활 구제를 목표로 하였다. 이후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大朝鮮獨立愛國婦人會)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를 결성하였다.
백신영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개신교 전도사 활동을 하던 중 1919년 7월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 가입하였다. 부산지부장과 결사부장 등을 역임하다가 1919년 11월 경찰에 붙잡혔다. 1920년 6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백신영 (白信永)
백신영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개신교 전도사 활동을 하던 중 1919년 7월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 가입하였다. 부산지부장과 결사부장 등을 역임하다가 1919년 11월 경찰에 붙잡혔다. 1920년 6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성완은 일제강점기에 3·1운동에 참여하고 혈성단애국부인회와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일에 만세시위가 시작되자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함경남도 원산 상동교회 등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1919년 4월 장선희, 오현주, 오현관, 이정숙과 함께 혈성단애국부인회를 결성하였다. 혈성단애국부인회는 같은 해 6월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애국부인회로 개편되었다. 이성완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결사부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이후 원산여자청년회와 정평여자청년회에서 여성청년운동을 이끌었다.
이성완 (李誠完)
이성완은 일제강점기에 3·1운동에 참여하고 혈성단애국부인회와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일에 만세시위가 시작되자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함경남도 원산 상동교회 등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1919년 4월 장선희, 오현주, 오현관, 이정숙과 함께 혈성단애국부인회를 결성하였다. 혈성단애국부인회는 같은 해 6월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애국부인회로 개편되었다. 이성완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결사부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이후 원산여자청년회와 정평여자청년회에서 여성청년운동을 이끌었다.
이정숙은 일제강점기 혈성단애국부인회,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로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적십자부 부장을 맡았다.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모금 활동을 하다가 1919년 11월 체포되었으며,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정숙 (李貞淑)
이정숙은 일제강점기 혈성단애국부인회,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로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적십자부 부장을 맡았다.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모금 활동을 하다가 1919년 11월 체포되었으며,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혜경은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와 근우회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진성여학교 교사로 있던 1919년 10월 김마리아와 함께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개편을 주도하였고, 부회장 및 원산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11월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만기 출옥 후에 성경학원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1928년에는 근우회 대구지회에서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혜경 (李惠卿)
이혜경은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와 근우회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진성여학교 교사로 있던 1919년 10월 김마리아와 함께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개편을 주도하였고, 부회장 및 원산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11월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만기 출옥 후에 성경학원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1928년에는 근우회 대구지회에서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갑순은 일제강점기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와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부회장으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 활동을 펼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6월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와 혈성단애국부인회가 통합하여 출범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가 김마리아를 중심으로 개편될 때까지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상하이지부장으로 활동한 남편 송세호와 함께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갑순 (崔甲順)
최갑순은 일제강점기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와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부회장으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 활동을 펼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6월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와 혈성단애국부인회가 통합하여 출범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가 김마리아를 중심으로 개편될 때까지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상하이지부장으로 활동한 남편 송세호와 함께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정숙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대적 심리공작을 수행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7년 중국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선전부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임시의정원 비서, 임시정부 교통부 비서, 법무부 비서,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에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펼쳤다.
김정숙 (金貞淑)
김정숙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대적 심리공작을 수행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7년 중국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선전부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임시의정원 비서, 임시정부 교통부 비서, 법무부 비서,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에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펼쳤다.
황애시덕은 일제강점기 2·8독립선언과 3·1운동에 참여하고,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양 숭의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1913년 교사들과 함께 비밀결사 송죽회를 조직하였다. 1918년 일본 유학 중 2·8독립선언에 참여하였고, 귀국 후에는 3·1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파리강화회의에 여성 대표를 파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김마리아 등과 함께 1919년 9월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재조직하고 총무를 맡았다. 1929년부터는 농촌계몽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황애시덕 (黃愛施德)
황애시덕은 일제강점기 2·8독립선언과 3·1운동에 참여하고,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양 숭의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1913년 교사들과 함께 비밀결사 송죽회를 조직하였다. 1918년 일본 유학 중 2·8독립선언에 참여하였고, 귀국 후에는 3·1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파리강화회의에 여성 대표를 파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김마리아 등과 함께 1919년 9월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재조직하고 총무를 맡았다. 1929년부터는 농촌계몽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