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동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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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사례는 1868년 윤5월에 동래부에서 본부의 상황과 재정 내역 및 여러 가지 사무 규례를 정리하여 수록한 책이다. 권차가 없이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책에는 전체 읍총(邑摠)을 제시한 뒤에 이어 각 업무 관청의 정해진 인원 수와 소용 비용, 회계에 대해 싣고 있다. 강화도조약으로 개항하기 거의 직전인 1868년을 전후한 시기에 동래부의 운영 사정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동래부사례 (東萊府事例)
동래부사례는 1868년 윤5월에 동래부에서 본부의 상황과 재정 내역 및 여러 가지 사무 규례를 정리하여 수록한 책이다. 권차가 없이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책에는 전체 읍총(邑摠)을 제시한 뒤에 이어 각 업무 관청의 정해진 인원 수와 소용 비용, 회계에 대해 싣고 있다. 강화도조약으로 개항하기 거의 직전인 1868년을 전후한 시기에 동래부의 운영 사정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동래부읍지』는 1899년 경상남도 동래부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불분권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특히 환적 항목이 상세하여 조선시대 동래부사의 임무 수행 상황을 연구하는 데 사료적 가치가 있다. 19세기 말 동래부의 역사와 인문지리·자연지리, 행정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당시 지역사회의 변화와 발전 과정을 연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
동래부읍지 (東來府邑誌)
『동래부읍지』는 1899년 경상남도 동래부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불분권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특히 환적 항목이 상세하여 조선시대 동래부사의 임무 수행 상황을 연구하는 데 사료적 가치가 있다. 19세기 말 동래부의 역사와 인문지리·자연지리, 행정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당시 지역사회의 변화와 발전 과정을 연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공작미는 조선 후기, 조선 정부가 공무역의 대가로 대마번에게 지급하던 쌀이다. 임진왜란이 직후 기유약조의 체결로 대일 무역이 재개되면서 조선 정부는 일본에서 수입하던 물품의 대가로 조선 무명인 공목(公木)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17세기 중반부터 일본 측의 요구로 공목의 일부를 쌀로 대신 지급했는데 이를 공작미라고 불렀다.
공작미 (公作米)
공작미는 조선 후기, 조선 정부가 공무역의 대가로 대마번에게 지급하던 쌀이다. 임진왜란이 직후 기유약조의 체결로 대일 무역이 재개되면서 조선 정부는 일본에서 수입하던 물품의 대가로 조선 무명인 공목(公木)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17세기 중반부터 일본 측의 요구로 공목의 일부를 쌀로 대신 지급했는데 이를 공작미라고 불렀다.
변박은 조선 후기에 「동래부순절도」, 「부산진순절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며, 도화서에 소속되지 않은 동래부 지역 화가였다. 1760년에 그린 「동래부순절도」와 「부산진순절도」로 조엄의 인정을 받아 1763년 통신사행에 참여하였다. 일본에도 그가 그린 작품이 몇 점 남아 있다.
변박 (卞璞)
변박은 조선 후기에 「동래부순절도」, 「부산진순절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며, 도화서에 소속되지 않은 동래부 지역 화가였다. 1760년에 그린 「동래부순절도」와 「부산진순절도」로 조엄의 인정을 받아 1763년 통신사행에 참여하였다. 일본에도 그가 그린 작품이 몇 점 남아 있다.
부산광역시 기장 지역의 옛 지명.
기장 (機張)
부산광역시 기장 지역의 옛 지명.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칠산동)에 있는 공립고등학교.
동래고등학교 (東萊高等學校)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칠산동)에 있는 공립고등학교.
조선 후기의 화가 변박(卞璞)이 그린 기록화.
부산진순절도 (釜山鎭殉節圖)
조선 후기의 화가 변박(卞璞)이 그린 기록화.
왜학훈도는 조선시대에 사역원에 속한 일본어 역관으로, 일본어 통역과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한 관리이다. 1393년(태조 2)에 정9품 관직으로 사역원에 2명을 두고,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하게 한 것이 시초이다. 조선 정부는 사역원 외에 외임(外任)으로 종9품직의 왜학훈도를 부산포와 제포에 파견하여 일본인들을 접대하도록 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사역원 소속으로 동래부에 파견되어 동래부와 왜관 간의 의사를 중개하고 통역을 담당하였다.
왜학훈도 (倭學訓導)
왜학훈도는 조선시대에 사역원에 속한 일본어 역관으로, 일본어 통역과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한 관리이다. 1393년(태조 2)에 정9품 관직으로 사역원에 2명을 두고,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하게 한 것이 시초이다. 조선 정부는 사역원 외에 외임(外任)으로 종9품직의 왜학훈도를 부산포와 제포에 파견하여 일본인들을 접대하도록 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사역원 소속으로 동래부에 파견되어 동래부와 왜관 간의 의사를 중개하고 통역을 담당하였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지역의 옛 지명.
언양 (彦陽)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지역의 옛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