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리얼리즘_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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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식은 해방 이후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장, 중앙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사진가이다. 와세다중학교 입학 선물로 카메라를 받고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44~46년 일본물리탐광주식회사에서 과학사진을 찍었다. 1946년부터 사진현상소 ‘아르스(ARS)’를 운영했으며 부산광화회를 결성했다. 한국전쟁에 종군사진기자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살롱 사진’과 ‘회화주의 사진’을 주로 찍었다. 1950년대부터 ‘생활주의 리얼리즘’의 사진 이념을 주장했다. 1966년부터는 한국 고건축사진을 연재했고, 이를 모아 사진집 『한국의 고건축』(1977)을 출간했다.
임응식 (林應植)
임응식은 해방 이후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장, 중앙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사진가이다. 와세다중학교 입학 선물로 카메라를 받고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44~46년 일본물리탐광주식회사에서 과학사진을 찍었다. 1946년부터 사진현상소 ‘아르스(ARS)’를 운영했으며 부산광화회를 결성했다. 한국전쟁에 종군사진기자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살롱 사진’과 ‘회화주의 사진’을 주로 찍었다. 1950년대부터 ‘생활주의 리얼리즘’의 사진 이념을 주장했다. 1966년부터는 한국 고건축사진을 연재했고, 이를 모아 사진집 『한국의 고건축』(1977)을 출간했다.
'동아사진콘테스트'는 1963년, 동아일보사가 창설하여 1960년대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전개에 크게 기여한 사진 공모전이다. 「동아사진동우회」를 운영하면서 생활주의리얼리즘 사진을 확산시켰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함께 민전과 관전, 리얼리즘 사진과 예술 사진이라는 경쟁과 견제의 관계를 유지하며 1960년대 우리나라 사진계를 견인한 공모전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동아사진콘테스트 (東亞寫眞contest)
'동아사진콘테스트'는 1963년, 동아일보사가 창설하여 1960년대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전개에 크게 기여한 사진 공모전이다. 「동아사진동우회」를 운영하면서 생활주의리얼리즘 사진을 확산시켰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함께 민전과 관전, 리얼리즘 사진과 예술 사진이라는 경쟁과 견제의 관계를 유지하며 1960년대 우리나라 사진계를 견인한 공모전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사진문화』는 1956년 5월 한국사진문화사에서 창간하여 1958년 11월까지 발행한 사진 전문 종합잡지이다. 월간을 표방했지만 부정기적으로 발행하였고, 통권 제11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하였다. 1948년에 나왔던 『사진문화』와 이름이 같고 판형도 같아서 복간 혹은 속간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다른 잡지이다. 다만 발행인 조명원은 창간사에서 6·25전쟁으로 중단된 과거 잡지 『사진문화』의 뜻을 계승한다고 밝혔다.
사진문화 (寫眞文化)
『사진문화』는 1956년 5월 한국사진문화사에서 창간하여 1958년 11월까지 발행한 사진 전문 종합잡지이다. 월간을 표방했지만 부정기적으로 발행하였고, 통권 제11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하였다. 1948년에 나왔던 『사진문화』와 이름이 같고 판형도 같아서 복간 혹은 속간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다른 잡지이다. 다만 발행인 조명원은 창간사에서 6·25전쟁으로 중단된 과거 잡지 『사진문화』의 뜻을 계승한다고 밝혔다.
신선회는 1956년 8월 이형록을 중심으로 20~30대 젊은 사진가 17명이 리얼리즘사진을 기치로 모여 결성한 사진 단체이다. 회원들은 해방 이전까지 한국사진의 주도적 경향이었던 이른바 '살롱사진'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자연 풍경 위주였던 예술사진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신선회는 리얼리즘의 길을 걷고자 했다. 신선회의 리얼리즘은 임응식이 주장한 '생활주의'와 유사하며, 각종 공모전을 통해 창작 활동을 펼쳐나갔다.
신선회 (新線會)
신선회는 1956년 8월 이형록을 중심으로 20~30대 젊은 사진가 17명이 리얼리즘사진을 기치로 모여 결성한 사진 단체이다. 회원들은 해방 이전까지 한국사진의 주도적 경향이었던 이른바 '살롱사진'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자연 풍경 위주였던 예술사진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신선회는 리얼리즘의 길을 걷고자 했다. 신선회의 리얼리즘은 임응식이 주장한 '생활주의'와 유사하며, 각종 공모전을 통해 창작 활동을 펼쳐나갔다.
최민식은 인간의 삶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한 제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다. 1928년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다. 1955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중앙미술학원에서 2년간 수학하였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보게 된 사진집 『인간가족』에 감명을 받아 사진가의 길로 들어섰다. 1957년 귀국 후 부산에 거주하며 서민들의 삶을 담아낸 작품집 『휴먼』 시리즈를 14권까지 출간하였으며, 국내외 각종 공모전에 참가하였다. 휴머니즘을 사상적 배경으로 평생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였다. 사망 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최민식 사진상이 제정되었다.
최민식 (崔敏植)
최민식은 인간의 삶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한 제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다. 1928년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났다. 1955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중앙미술학원에서 2년간 수학하였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보게 된 사진집 『인간가족』에 감명을 받아 사진가의 길로 들어섰다. 1957년 귀국 후 부산에 거주하며 서민들의 삶을 담아낸 작품집 『휴먼』 시리즈를 14권까지 출간하였으며, 국내외 각종 공모전에 참가하였다. 휴머니즘을 사상적 배경으로 평생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였다. 사망 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최민식 사진상이 제정되었다.
신선회 제1회 발표전은 리얼리즘이라는 가치를 표방하며 결성한 신선회가 1957년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개최한 창립 전시회이다. '시장의 생태'를 공동 주제로 한 회원들의 작품이 출품되었으며, 다수의 사진가들이 리얼리즘을 한국 사진의 새로운 흐름으로 받아들였음을 상징하는 전시로 평가받는다.
신선회제1회발표전 (新線會第1回發表展)
신선회 제1회 발표전은 리얼리즘이라는 가치를 표방하며 결성한 신선회가 1957년 동화백화점 화랑에서 개최한 창립 전시회이다. '시장의 생태'를 공동 주제로 한 회원들의 작품이 출품되었으며, 다수의 사진가들이 리얼리즘을 한국 사진의 새로운 흐름으로 받아들였음을 상징하는 전시로 평가받는다.
'제1회 임석제 예술사진개인전'은 1948년, 해방 후 국내에서 열린 첫 사진 개인전이자, 처음으로 사회주의리얼리즘이라는 사진 형식을 선보인 사진전이다. 부두 노동자, 소작농 등 노동자와 농민을 주로 촬영했으며, 그들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일제강점기의 예술사진과 확연히 구분되는 사진을 처음 시도했다는 점에서 선구적 전시로 평가받는다.
제1회임석제예술사진개인전 (林奭濟第1回藝術寫眞個人展)
'제1회 임석제 예술사진개인전'은 1948년, 해방 후 국내에서 열린 첫 사진 개인전이자, 처음으로 사회주의리얼리즘이라는 사진 형식을 선보인 사진전이다. 부두 노동자, 소작농 등 노동자와 농민을 주로 촬영했으며, 그들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일제강점기의 예술사진과 확연히 구분되는 사진을 처음 시도했다는 점에서 선구적 전시로 평가받는다.
구왕삼은 「군동」, 「콩나물」 등의 작품을 남긴 리얼리즘 사진가이자 사진 평론가이다. 1909년 경상남도 김해군에서 태어났으며, 1930년대에 대구에서 사진 활동을 시작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1946년 결성된 경북사진연맹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당시 유행하던 살롱사진 경향을 거부하고 리얼리즘 사진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구왕삼 (具王三)
구왕삼은 「군동」, 「콩나물」 등의 작품을 남긴 리얼리즘 사진가이자 사진 평론가이다. 1909년 경상남도 김해군에서 태어났으며, 1930년대에 대구에서 사진 활동을 시작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1946년 결성된 경북사진연맹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당시 유행하던 살롱사진 경향을 거부하고 리얼리즘 사진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조선사진동맹은 1947년 6월 좌익 성향의 사진가들이 결성한 사진 단체이다. 일제의 잔재로 여겨졌던 살롱사진의 경향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진예술의 발전을 도모했던 사진인 약 100여명이 동참하였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실현 및 노동자의 해방과 전인민의 자유를 위해 투쟁할 것을 단체의 목적으로 삼고 사회주의자로서 사진가의 역할을 제시했다.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정부가 국민보도연맹을 내세워 좌익 계열 단체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자 회원들의 월북과 함께 와해되었다.
조선사진동맹 (朝鮮寫眞同盟)
조선사진동맹은 1947년 6월 좌익 성향의 사진가들이 결성한 사진 단체이다. 일제의 잔재로 여겨졌던 살롱사진의 경향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진예술의 발전을 도모했던 사진인 약 100여명이 동참하였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실현 및 노동자의 해방과 전인민의 자유를 위해 투쟁할 것을 단체의 목적으로 삼고 사회주의자로서 사진가의 역할을 제시했다.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정부가 국민보도연맹을 내세워 좌익 계열 단체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자 회원들의 월북과 함께 와해되었다.
인간가족전은 1957년 4월, 경복궁미술관에서 개최된 1955년 뉴욕근대미술박물관의 「The Family of Man」의 국내 유치 사진전시회이다. 1957년 4월 3일부터 5월 5일까지 진행된 대규모 전시회였는데, 이 전시를 통해 리얼리즘 사진이 한국 사진의 주요한 흐름이 되었다.
인간가족전 (人間家族展)
인간가족전은 1957년 4월, 경복궁미술관에서 개최된 1955년 뉴욕근대미술박물관의 「The Family of Man」의 국내 유치 사진전시회이다. 1957년 4월 3일부터 5월 5일까지 진행된 대규모 전시회였는데, 이 전시를 통해 리얼리즘 사진이 한국 사진의 주요한 흐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