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만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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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우리 나라와 중국 해안에서 약탈을 하던 일본의 해적이다. 일본 정국의 불안정으로 남부 지방 일부 세력이 해적화하고, 동아시아의 정세혼란으로 왜구퇴치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왜구의 약탈은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갔다. 한반도의 해안지대만이 아니라 내륙에까지 침범하여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왜구는 고려말 조선초에 가장 심했고, 특히 고려 말 약 40년간은 그 피해가 막대해서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지속적인 왜구소탕 작업, 고려와 조선의 쓰시마 정벌에도 불구하고 왜구 침입은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되었다.
왜구 (倭寇)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우리 나라와 중국 해안에서 약탈을 하던 일본의 해적이다. 일본 정국의 불안정으로 남부 지방 일부 세력이 해적화하고, 동아시아의 정세혼란으로 왜구퇴치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왜구의 약탈은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갔다. 한반도의 해안지대만이 아니라 내륙에까지 침범하여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왜구는 고려말 조선초에 가장 심했고, 특히 고려 말 약 40년간은 그 피해가 막대해서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지속적인 왜구소탕 작업, 고려와 조선의 쓰시마 정벌에도 불구하고 왜구 침입은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되었다.
진평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6대(재위: 579~632) 왕이다. 진흥왕의 영토 확장을 토대로 관제 정비 등 지배체제 구축과 정비에 힘썼다. 특히, 초기에는 군사·재정·관리·인사 관련 관서를 주로 정비하였고, 후기에는 관원을 확대하는 데 주력하였다. 중국 수나라와 조공을 통한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중국 문물과 제도를 신라에 반영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석가불 신앙을 내세우면서 입당 구법승을 적극적으로 파견하여 불교사상을 통해서도 왕실의 권위를 강화하려고 하였다. 고구려·백제와 치열한 영역 다툼을 벌이기도 하였다.
진평왕 (眞平王)
진평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6대(재위: 579~632) 왕이다. 진흥왕의 영토 확장을 토대로 관제 정비 등 지배체제 구축과 정비에 힘썼다. 특히, 초기에는 군사·재정·관리·인사 관련 관서를 주로 정비하였고, 후기에는 관원을 확대하는 데 주력하였다. 중국 수나라와 조공을 통한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중국 문물과 제도를 신라에 반영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석가불 신앙을 내세우면서 입당 구법승을 적극적으로 파견하여 불교사상을 통해서도 왕실의 권위를 강화하려고 하였다. 고구려·백제와 치열한 영역 다툼을 벌이기도 하였다.
만호부는 고려 후기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설치된 군사 조직이다. 1281년(충렬왕 7)에 남해안 요충지에 진변만호부(鎭邊萬戶府)를 둔 것을 시작으로 점점 그 수가 늘어났다. 만호부의 만호는 일반적으로 원나라 황제가 직접 임명하였고, 그 직위를 세습하였으므로 고려 국왕권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기도 하였다. 공민왕대 이후로는 원나라의 영향력과 상관없이 국내의 무장들에게 만호·천호(千戶) 등의 군직을 수여하고, 국경 인근이나 주요 방어 거점에 만호부를 여럿 설치해서 운영하였다.
만호부 (萬戶府)
만호부는 고려 후기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설치된 군사 조직이다. 1281년(충렬왕 7)에 남해안 요충지에 진변만호부(鎭邊萬戶府)를 둔 것을 시작으로 점점 그 수가 늘어났다. 만호부의 만호는 일반적으로 원나라 황제가 직접 임명하였고, 그 직위를 세습하였으므로 고려 국왕권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기도 하였다. 공민왕대 이후로는 원나라의 영향력과 상관없이 국내의 무장들에게 만호·천호(千戶) 등의 군직을 수여하고, 국경 인근이나 주요 방어 거점에 만호부를 여럿 설치해서 운영하였다.
평안북도 안주 지역의 옛 지명.
영주 (寧州)
평안북도 안주 지역의 옛 지명.
천호는 고려 후기 몽골 제국의 영향을 받아 설치된 군직으로 1,000명의 군사를 통솔하는 군사 지휘관의 명칭이다. 1281년(충렬왕 7)에 남해안 요충지에 진변만호부(鎭邊萬戶府)를 둔 이래 각지에 설치된 만호부 내에서 만호의 휘하에서 1,000명의 군사를 통솔하는 군사 지휘관으로 배치되었다. 천호는 일반적으로 고려 국왕의 천거에 따라 원나라 황제가 임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공민왕 대 이후로는 원나라의 영향력과 상관없이 국내의 무장들에게 천호직을 수여하였으며, 우왕 대 이후에는 각 익군을 통솔하는 지휘관으로서 전국에 배치되었다.
천호 (千戶)
천호는 고려 후기 몽골 제국의 영향을 받아 설치된 군직으로 1,000명의 군사를 통솔하는 군사 지휘관의 명칭이다. 1281년(충렬왕 7)에 남해안 요충지에 진변만호부(鎭邊萬戶府)를 둔 이래 각지에 설치된 만호부 내에서 만호의 휘하에서 1,000명의 군사를 통솔하는 군사 지휘관으로 배치되었다. 천호는 일반적으로 고려 국왕의 천거에 따라 원나라 황제가 임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공민왕 대 이후로는 원나라의 영향력과 상관없이 국내의 무장들에게 천호직을 수여하였으며, 우왕 대 이후에는 각 익군을 통솔하는 지휘관으로서 전국에 배치되었다.
고려 충렬왕 때 방도금란(防盜禁亂)을 담당하던 관서.
사평순위부 (司平巡衛府)
고려 충렬왕 때 방도금란(防盜禁亂)을 담당하던 관서.
고려 후기의 무반직(武班職).
부만호 (副萬戶)
고려 후기의 무반직(武班職).
고려 후기의 군직(軍職).
상만호 (上萬戶)
고려 후기의 군직(軍職).
1369년(공민왕 18) 북원(北元)의 침입에 대비하여 강계(江界)에 설치한 만호부(萬戶府).
강계만호부 (江界萬戶府)
1369년(공민왕 18) 북원(北元)의 침입에 대비하여 강계(江界)에 설치한 만호부(萬戶府).
고려 후기 몽골(원)의 영향을 받아 설치되었던 만호부(萬戶府)의 관직.
도만호 (都萬戶)
고려 후기 몽골(원)의 영향을 받아 설치되었던 만호부(萬戶府)의 관직.
고려 후기에, 동북면도지휘사, 홍주목사, 문하평리 등을 역임한 문신.
정휘 (鄭暉)
고려 후기에, 동북면도지휘사, 홍주목사, 문하평리 등을 역임한 문신.
백호(百戶)는 고려 후기 몽골 제국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군직으로, 100명의 군사를 통솔하는 군사 지휘관의 명칭이다. 1281년(충렬왕 7)에 진변만호부(鎭邊萬戶府)를 둔 이래 각지에 설치된 만호부(萬戶府) 내에서 만호(萬戶) · 천호(千戶)의 휘하에서 100명의 군사를 통솔하는 군사 지휘관으로 배치되었다. 공민왕대 이후로는 원나라의 영향력과 상관없이 각 진장(鎭將)의 품계를 나타내기 위해 국내의 무장들에게 백호직을 수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왕대 이후에는, 만호나 천호의 하급 지휘관으로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호 (百戶)
백호(百戶)는 고려 후기 몽골 제국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군직으로, 100명의 군사를 통솔하는 군사 지휘관의 명칭이다. 1281년(충렬왕 7)에 진변만호부(鎭邊萬戶府)를 둔 이래 각지에 설치된 만호부(萬戶府) 내에서 만호(萬戶) · 천호(千戶)의 휘하에서 100명의 군사를 통솔하는 군사 지휘관으로 배치되었다. 공민왕대 이후로는 원나라의 영향력과 상관없이 각 진장(鎭將)의 품계를 나타내기 위해 국내의 무장들에게 백호직을 수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왕대 이후에는, 만호나 천호의 하급 지휘관으로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함경북도 길주 지역의 옛 지명.
길성 (吉城)
함경북도 길주 지역의 옛 지명.
고려후기 도첨의찬성사, 검교첨의정승, 상의식목도감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폐행(嬖幸).
이지저 (李之氐)
고려후기 도첨의찬성사, 검교첨의정승, 상의식목도감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폐행(嬖幸).
1391년(공양왕 3)에 동북면(東北面)의 갑주(甲州)에 설치한 만호부(萬戶府).
갑주만호부 (甲州萬戶府)
1391년(공양왕 3)에 동북면(東北面)의 갑주(甲州)에 설치한 만호부(萬戶府).
함경남도 정평 지역의 옛 지명.
선위 (宣威)
함경남도 정평 지역의 옛 지명.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었던 고려 때의 진.
고선화진 (古宣化鎭)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었던 고려 때의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