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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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반정은 조선 후기 정조 때에 유행한 한문문체를 개혁하여 순정고문으로 환원시키려던 정책이다. 문체순정, 문체파동, 비변문체, 문체지교정, 귀정이라고도 한다. 정조 당시는 패관잡기나 명말청초 중국 문인들의 문집에 영향을 받아 개성주의에 입각한 참신한 문체가 크게 유행하였다. 정조는 이를 배격하고 순정한 고문의 문풍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정조는 불순한 문체의 근원이 박지원과 그의 저작인 『열하일기』에 있다고 보고, 박지원에게 순정한 고문을 지어 바치도록 하였다. 또한 고문의 모범을 제시하기 위해 『주자선통(朱子選統)』, 『팔자백선(八子百選)』 등을 출간하였다.
문체반정 (文體反正)
문체반정은 조선 후기 정조 때에 유행한 한문문체를 개혁하여 순정고문으로 환원시키려던 정책이다. 문체순정, 문체파동, 비변문체, 문체지교정, 귀정이라고도 한다. 정조 당시는 패관잡기나 명말청초 중국 문인들의 문집에 영향을 받아 개성주의에 입각한 참신한 문체가 크게 유행하였다. 정조는 이를 배격하고 순정한 고문의 문풍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정조는 불순한 문체의 근원이 박지원과 그의 저작인 『열하일기』에 있다고 보고, 박지원에게 순정한 고문을 지어 바치도록 하였다. 또한 고문의 모범을 제시하기 위해 『주자선통(朱子選統)』, 『팔자백선(八子百選)』 등을 출간하였다.
『문장강화』는 1948년 이태준(李泰俊)이 지은 문장론이다. 『문장(文章)』에 10회(1939.2.~1939.10, 1940.3.) 연재 후, 여기에 예문 및 설명을 덧붙여 1940년 문장사(文章社)에서 초판본, 1947년과 1948년 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증정판이 각각 간행되었다. 『문장강화』는 독자적인 조선어 문장론의 선례로 평가된다. 기존의 문장 작법 교본이 대개 일본 저작의 중역이었다면, 이태준은 문장 구성의 방법과 구체적인 예문을 동시대 문학과 고전에서 직접 발굴함으로써 조선어 문장론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에 기여했다.
문장강화 (文章講話)
『문장강화』는 1948년 이태준(李泰俊)이 지은 문장론이다. 『문장(文章)』에 10회(1939.2.~1939.10, 1940.3.) 연재 후, 여기에 예문 및 설명을 덧붙여 1940년 문장사(文章社)에서 초판본, 1947년과 1948년 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증정판이 각각 간행되었다. 『문장강화』는 독자적인 조선어 문장론의 선례로 평가된다. 기존의 문장 작법 교본이 대개 일본 저작의 중역이었다면, 이태준은 문장 구성의 방법과 구체적인 예문을 동시대 문학과 고전에서 직접 발굴함으로써 조선어 문장론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에 기여했다.
1938년 이기택이 우리나라의 역대 문헌 가운데 문체를 달리하는 2,050여 편의 문장을 가려 뽑아 분류하여 편찬한 유서(類書).
문헌보감 (文獻寶鑑)
1938년 이기택이 우리나라의 역대 문헌 가운데 문체를 달리하는 2,050여 편의 문장을 가려 뽑아 분류하여 편찬한 유서(類書).
『애국부인전』은 1907년 장지연(張志淵)이 순국문체로 번역한 잔 다르크 전기이다. 이 시기 서구 영웅전의 출판은 보호국으로 전락한 대한제국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개된 계몽운동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애국부인전』의 번역 의도는 유럽의 대표적인 여성 영웅 잔 다르크의 활약을 소개함으로써 새로운 여성 모델 겸 애국자로서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애국부인전 (愛國婦人傳)
『애국부인전』은 1907년 장지연(張志淵)이 순국문체로 번역한 잔 다르크 전기이다. 이 시기 서구 영웅전의 출판은 보호국으로 전락한 대한제국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개된 계몽운동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애국부인전』의 번역 의도는 유럽의 대표적인 여성 영웅 잔 다르크의 활약을 소개함으로써 새로운 여성 모델 겸 애국자로서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설(說)은 이치에 따라서 사물을 해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는 한문 문체이다. 뜻과 이치를 해설하는 데에 자기의 견해를 분명히 하면서, 자유롭고 또 상세하게 서술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설의 문체는 중국 당(唐)나라의 한유(韓愈)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의 이규보(李奎報)로부터 시작하여 조선 후기까지 꾸준하게 설 문체로 서술한 작품이 창작되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설의 문체는 직서적인 설과 우언적인 설 2가지로 크게 구분되고, 그 내용 및 제재에 따라 총 15가지로 분류된다.
설 (說)
설(說)은 이치에 따라서 사물을 해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는 한문 문체이다. 뜻과 이치를 해설하는 데에 자기의 견해를 분명히 하면서, 자유롭고 또 상세하게 서술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설의 문체는 중국 당(唐)나라의 한유(韓愈)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의 이규보(李奎報)로부터 시작하여 조선 후기까지 꾸준하게 설 문체로 서술한 작품이 창작되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설의 문체는 직서적인 설과 우언적인 설 2가지로 크게 구분되고, 그 내용 및 제재에 따라 총 15가지로 분류된다.
이옥(李鈺)은 조선 후기에 개성적이고 파격적인 문학 작품을 저술한 문인이다. 그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기상(其相), 호는 문무자(文無子)·매사(梅史)·매암(梅庵) 등이다. 정조(正祖)의 문체 반정(文體反正)에 반하는 파격적이고 독특한 문체로 인해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자 전원 생활을 하면서 저작 활동을 했다.
이옥 (李鈺)
이옥(李鈺)은 조선 후기에 개성적이고 파격적인 문학 작품을 저술한 문인이다. 그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기상(其相), 호는 문무자(文無子)·매사(梅史)·매암(梅庵) 등이다. 정조(正祖)의 문체 반정(文體反正)에 반하는 파격적이고 독특한 문체로 인해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자 전원 생활을 하면서 저작 활동을 했다.
의고문(擬古文)은 당송고문(唐宋古文)에 반대하여 진한(秦漢) 이전의 문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에 의하여 지어진 한문 문체이다. 당송고문이 유행한 이후,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대두되었다. 중국에서는 명(明)나라 중엽 이후 유행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선조(宣祖) 이후 여러 고문 작가들에 의해 유행하였다. 진한시대 고문을 추숭하다가 결국 지나친 모방의 한계를 보이기도 했지만,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진한고문 본래의 문체를 내재화하면서도 독자적인 미감과 의미를 산출하기도 하였으며, 당송시대 고문과 절충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의고문 (擬古文)
의고문(擬古文)은 당송고문(唐宋古文)에 반대하여 진한(秦漢) 이전의 문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에 의하여 지어진 한문 문체이다. 당송고문이 유행한 이후,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대두되었다. 중국에서는 명(明)나라 중엽 이후 유행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선조(宣祖) 이후 여러 고문 작가들에 의해 유행하였다. 진한시대 고문을 추숭하다가 결국 지나친 모방의 한계를 보이기도 했지만,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진한고문 본래의 문체를 내재화하면서도 독자적인 미감과 의미를 산출하기도 하였으며, 당송시대 고문과 절충하려는 시도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