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반가사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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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상은 대좌에 걸터앉아 오른손을 뺨에 대고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표현한 불상이다. 반가사유상은 의자에 반가좌한 자세와 사유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팔의 표현이 공통적이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상의를 입지 않았으며 치마를 입은 것도 동일하다. 이 보살상은 6∼7세기 약 100년 동안 미륵신앙과 관련되어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다. 현재 약 40여 구 이상이 파악되는데 몇몇은 외국에 소장되어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삼국시대 작품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등이 있다.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의 고대 조각의 기술적 발달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반가사유상 (半跏思惟像)
반가사유상은 대좌에 걸터앉아 오른손을 뺨에 대고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표현한 불상이다. 반가사유상은 의자에 반가좌한 자세와 사유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팔의 표현이 공통적이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상의를 입지 않았으며 치마를 입은 것도 동일하다. 이 보살상은 6∼7세기 약 100년 동안 미륵신앙과 관련되어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다. 현재 약 40여 구 이상이 파악되는데 몇몇은 외국에 소장되어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삼국시대 작품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등이 있다.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의 고대 조각의 기술적 발달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삼국시대의 보살상.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金銅 彌勒菩薩 半跏思惟像)
삼국시대의 보살상.
세종시 연화사 무인명 불비상 및 대좌는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연화사에 봉안된 2점의 석조 불비상 중 하나이다. 197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 비석 형태의 네 면에 돌아가며 새겨져 있다. 정면에는 불좌상을 주존으로 양협시보살과 승려상을 각각 표현하였다. 뒷면에는 격자문을 배경으로 한쪽으로 숙인 얼굴에 오른손을 갖다 댄 반가사유상을 새겼다. 좌우에는 중앙의 반가상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각각 향로와 꽃으로 보이는 지물을 들고 있는 보살상이 보인다. 도상이 아미타 오존상과 미륵 삼존상이 맞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극락정토도라고 할 수 있다.
세종시 연화사 무인명 불비상 및 대좌 (世宗市 蓮花寺 戊寅銘 佛碑像 및 臺座)
세종시 연화사 무인명 불비상 및 대좌는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연화사에 봉안된 2점의 석조 불비상 중 하나이다. 197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 비석 형태의 네 면에 돌아가며 새겨져 있다. 정면에는 불좌상을 주존으로 양협시보살과 승려상을 각각 표현하였다. 뒷면에는 격자문을 배경으로 한쪽으로 숙인 얼굴에 오른손을 갖다 댄 반가사유상을 새겼다. 좌우에는 중앙의 반가상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각각 향로와 꽃으로 보이는 지물을 들고 있는 보살상이 보인다. 도상이 아미타 오존상과 미륵 삼존상이 맞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극락정토도라고 할 수 있다.
일본 교토[京都] 고류지[廣隆寺]에 소장된 목조 미륵보살반가상.
광륭사 목조 미륵보살 반가상 (廣隆寺 木造 彌勒菩薩 半跏像)
일본 교토[京都] 고류지[廣隆寺]에 소장된 목조 미륵보살반가상.
고구려의 보살상.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金銅 彌勒菩薩 半跏 思惟像)
고구려의 보살상.
삼국시대의 보살상.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金銅 彌勒菩薩 半跏 思惟像)
삼국시대의 보살상.
삼국시대의 보살상.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金銅 彌勒菩薩 半跏 思惟像)
삼국시대의 보살상.
삼국시대의 보살상.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金銅 彌勒菩薩 半跏 思惟像)
삼국시대의 보살상.
미륵보살 반가사유비상은 통일신라시대의 비상(碑像)이다. 충남 연기군 비암사에서 발견된 비상으로 673년경 전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면 중앙에 부조된 반가사유상을 위주로 네 면에 모두 조각이 있다. 반가상은 대좌에 앉아 오른쪽 발을 왼쪽 무릎 위에 얹어 반가좌를 하고 있다. 오른손은 들어서 턱을 괴고 사유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보관을 쓰고 목걸이를 하였으며 천의는 두 팔에 걸쳐서 대좌까지 늘어뜨렸다. 이 비상은 아래 대좌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이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지방 양식과 당시의 신앙 내용을 알려 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미륵보살 반가사유비상 (彌勒菩薩 半跏思惟碑像)
미륵보살 반가사유비상은 통일신라시대의 비상(碑像)이다. 충남 연기군 비암사에서 발견된 비상으로 673년경 전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면 중앙에 부조된 반가사유상을 위주로 네 면에 모두 조각이 있다. 반가상은 대좌에 앉아 오른쪽 발을 왼쪽 무릎 위에 얹어 반가좌를 하고 있다. 오른손은 들어서 턱을 괴고 사유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보관을 쓰고 목걸이를 하였으며 천의는 두 팔에 걸쳐서 대좌까지 늘어뜨렸다. 이 비상은 아래 대좌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이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지방 양식과 당시의 신앙 내용을 알려 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증평 남하리 사지 마애불상군은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5구의 마애불이다. 1998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는 1.14~2.98㎝로, 부식이 심해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편편한 암벽면의 중앙에 본존입상을 조각하고, 좌우에 양협시보살상을 배치하였다. 여기에서 직각으로 교차된 북측 면에 독립된 마애불상입상 1구가, 정면 삼각형의 암반 북측 면에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모두 원만자비형의 인상과 당당한 체구를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불상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증평 남하리 사지 마애불상군 (曾坪 南下里 寺址 磨崖佛像群)
증평 남하리 사지 마애불상군은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5구의 마애불이다. 1998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는 1.14~2.98㎝로, 부식이 심해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편편한 암벽면의 중앙에 본존입상을 조각하고, 좌우에 양협시보살상을 배치하였다. 여기에서 직각으로 교차된 북측 면에 독립된 마애불상입상 1구가, 정면 삼각형의 암반 북측 면에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모두 원만자비형의 인상과 당당한 체구를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불상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경북대학교 박물관은 대구광역시 북구 대학로에 있는 경북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대구·경북지역의 유물을 수집·보존·관리·전시함으로써 학생들을 교육하고 지역민들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9년 도서관 건물의 일부를 빌려 개관하여 2011년 전시실, 시청각실, 보존처리실을 갖춘 독립건물이 되었다. 선사시대 자료부터 최근 민속자료까지 약 7,000여 점의 수집품과 40,000여 점의 발굴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가지정유산인 보물 7점이 있다. 대구·경북지역의 전통문화에 대한 학술조사·연구·전시, 사회교육시설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박물관 (慶北大學校 博物館)
경북대학교 박물관은 대구광역시 북구 대학로에 있는 경북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대구·경북지역의 유물을 수집·보존·관리·전시함으로써 학생들을 교육하고 지역민들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9년 도서관 건물의 일부를 빌려 개관하여 2011년 전시실, 시청각실, 보존처리실을 갖춘 독립건물이 되었다. 선사시대 자료부터 최근 민속자료까지 약 7,000여 점의 수집품과 40,000여 점의 발굴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가지정유산인 보물 7점이 있다. 대구·경북지역의 전통문화에 대한 학술조사·연구·전시, 사회교육시설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고성 장의사 석조 관음 반가상은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장의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불석으로 조성된 석조관음보살반가상이다. 2011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높이 36㎝로 기암괴석을 대좌로 삼아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올린 반가좌를 하고 있다. 강렬하면서도 독특한 인상 등으로 보아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승호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바다를 생계의 터전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음이 신앙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18세기 초 전후해 조성된 석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고성 장의사 석조 관음 반가상 (固城 藏義寺 石造 觀音 半跏像)
고성 장의사 석조 관음 반가상은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장의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불석으로 조성된 석조관음보살반가상이다. 2011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높이 36㎝로 기암괴석을 대좌로 삼아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올린 반가좌를 하고 있다. 강렬하면서도 독특한 인상 등으로 보아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승호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바다를 생계의 터전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음이 신앙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18세기 초 전후해 조성된 석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