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백두산정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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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는 17세기, 중국의 지린성[吉林省] 동남부와 압록강·두만강 너머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과 한국 간 분쟁하던 지역이다. 19세기 중반부터 만주에 사는 조선인이 미간지를 개발하고 정착하면서 분쟁지가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변두리였던 만주가 제국주의 침략을 받으면서 간도 문제는 국제 문제와 연동되었다. 1907년 청나라와 일본이 맺은 ‘간도협약’으로 인해 간도는 중국으로 귀속되었다. 한일합방 후 민족운동가들은 1870년대부터 형성된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시도하였고 이를 탄압하는 일제의 침략이 지속되었다.
간도 (間島)
간도는 17세기, 중국의 지린성[吉林省] 동남부와 압록강·두만강 너머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과 한국 간 분쟁하던 지역이다. 19세기 중반부터 만주에 사는 조선인이 미간지를 개발하고 정착하면서 분쟁지가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변두리였던 만주가 제국주의 침략을 받으면서 간도 문제는 국제 문제와 연동되었다. 1907년 청나라와 일본이 맺은 ‘간도협약’으로 인해 간도는 중국으로 귀속되었다. 한일합방 후 민족운동가들은 1870년대부터 형성된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시도하였고 이를 탄압하는 일제의 침략이 지속되었다.
함경북도 무산군의 연혁·인문지리·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9년에 편찬한 읍지.
무산군읍지 (茂山郡邑誌)
함경북도 무산군의 연혁·인문지리·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9년에 편찬한 읍지.
만주는 오늘날 중국의 동북지방으로, 요령성 · 길림성 · 흑룡강성 및 내몽고 자치구의 동부지역을 포괄한 지역이다. 고대부터 여러 종족의 삶의 터전이었고 중국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변경지역이었다. 1870년대~1900년대까지 조선인들이 이주하여 한인사회를 이루며 항일민족운동을 벌인 곳이다. 농민으로 구성된 한인사회는 민족운동의 기반이었다. 20세기에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았다. 1932년 만주국을 건국하였고 일제는 전쟁과 개발에 동원하기 위하여 조선인에 대한 정책이민을 추진하였다. 조선인은 '불령선인'에서 '개척자'로 불렸다.
만주 (滿洲)
만주는 오늘날 중국의 동북지방으로, 요령성 · 길림성 · 흑룡강성 및 내몽고 자치구의 동부지역을 포괄한 지역이다. 고대부터 여러 종족의 삶의 터전이었고 중국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변경지역이었다. 1870년대~1900년대까지 조선인들이 이주하여 한인사회를 이루며 항일민족운동을 벌인 곳이다. 농민으로 구성된 한인사회는 민족운동의 기반이었다. 20세기에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았다. 1932년 만주국을 건국하였고 일제는 전쟁과 개발에 동원하기 위하여 조선인에 대한 정책이민을 추진하였다. 조선인은 '불령선인'에서 '개척자'로 불렸다.
「백두산기(白頭山記)」는 조선 후기 홍세태(洪世泰)가 지은 백두산 기행문이다. 다만 작자가 자신이 직접 백두산을 답사하고 쓴 기행문이 아니라 '김경문(金慶門)'이라는 역관(譯官)의 말을 통해 들은 백두산 국경선 확정의 상황과 백두산의 지형 및 승경(勝景)을 관찰자적인 시점으로 기록하였다. 홍세태의 문집인 『유하집(柳下集)』 권 9에 수록되어 있다.
백두산기 (白頭山記)
「백두산기(白頭山記)」는 조선 후기 홍세태(洪世泰)가 지은 백두산 기행문이다. 다만 작자가 자신이 직접 백두산을 답사하고 쓴 기행문이 아니라 '김경문(金慶門)'이라는 역관(譯官)의 말을 통해 들은 백두산 국경선 확정의 상황과 백두산의 지형 및 승경(勝景)을 관찰자적인 시점으로 기록하였다. 홍세태의 문집인 『유하집(柳下集)』 권 9에 수록되어 있다.
삼지연시는 북한의 양강도 북동부에 있는 시이다. 동쪽은 대홍단군·백암군, 남쪽은 보천군, 서쪽과 북쪽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접하여 있다. 1961년에 양강도 보천군의 일부 지역과 함경북도 연사군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군을 새로 만들었다. 명칭은 삼지연호수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2019년 12월에 시로 승격되었다. 우리나라 지붕으로 불리는 백두용암대지 위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에서 연평균기온이 가장 낮은 곳으로, 전형적인 대륙성기후 지역이다. 유적으로는 백두산정계비가 남아 있으며, 동쪽 언덕에는 신무성이 있다.
삼지연시 (三池淵市)
삼지연시는 북한의 양강도 북동부에 있는 시이다. 동쪽은 대홍단군·백암군, 남쪽은 보천군, 서쪽과 북쪽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접하여 있다. 1961년에 양강도 보천군의 일부 지역과 함경북도 연사군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군을 새로 만들었다. 명칭은 삼지연호수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2019년 12월에 시로 승격되었다. 우리나라 지붕으로 불리는 백두용암대지 위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에서 연평균기온이 가장 낮은 곳으로, 전형적인 대륙성기후 지역이다. 유적으로는 백두산정계비가 남아 있으며, 동쪽 언덕에는 신무성이 있다.
조선후기 북부지방과 만주지방에 관한 군사적인 용도로 제작한 지도. 관방지도.
서북강계도 (西北彊界圖)
조선후기 북부지방과 만주지방에 관한 군사적인 용도로 제작한 지도. 관방지도.
조선후기 우리나라의 북방에 관한 군사적인 용도로 제작한 지도. 관방지도.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 (西北彼我兩界萬里一覽之圖)
조선후기 우리나라의 북방에 관한 군사적인 용도로 제작한 지도. 관방지도.
『감계사등록』은 1885년과 1887년 조선과 청나라가 백두산의 국경선을 획정할 때 조선측 대표인 이중하가 작성한 등록이다. 1860년 북경회담으로 러시아가 연해주를 차지하자, 조선과 청은 두만강과 백두산 인근의 국경을 정비하는 감계 회담을 추진하였다. 당시 안변부사였던 이중하는 두 차례 회담에 조선 대표로 파견되었다. 그는 회담 진행 과정에서 작성된 각종 문서와 고종에게 직접 보고한 계초(啓草), 별단초(別單草) 및 회담 내용인 담초(談草) 등을 날짜순으로 정리하였다. 19세기 말 한국 북방 영토 연구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감계사등록 (勘界事謄錄)
『감계사등록』은 1885년과 1887년 조선과 청나라가 백두산의 국경선을 획정할 때 조선측 대표인 이중하가 작성한 등록이다. 1860년 북경회담으로 러시아가 연해주를 차지하자, 조선과 청은 두만강과 백두산 인근의 국경을 정비하는 감계 회담을 추진하였다. 당시 안변부사였던 이중하는 두 차례 회담에 조선 대표로 파견되었다. 그는 회담 진행 과정에서 작성된 각종 문서와 고종에게 직접 보고한 계초(啓草), 별단초(別單草) 및 회담 내용인 담초(談草) 등을 날짜순으로 정리하였다. 19세기 말 한국 북방 영토 연구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