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병자호란"
검색결과 총 94건
인조는 조선 후기, 제16대(재위: 1623~1649) 국왕이다. 광해군과 북인(北人) 정권의 극단적인 정치에 반발하여 1623년 서인(西人)의 김류(金瑬) · 이귀(李貴) · 이괄(李适) 등과 '반정(反正)'을 일으킨 뒤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에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국내외에서 전쟁을 치루었다.
인조 (仁祖)
인조는 조선 후기, 제16대(재위: 1623~1649) 국왕이다. 광해군과 북인(北人) 정권의 극단적인 정치에 반발하여 1623년 서인(西人)의 김류(金瑬) · 이귀(李貴) · 이괄(李适) 등과 '반정(反正)'을 일으킨 뒤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에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국내외에서 전쟁을 치루었다.
송시열은 조선 후기 효종~숙종 대 문신이이자 학자로서 김장생·김집의 제자이며, 주희와 이이의 학문을 모범으로 삼았다. 효종 대 중국 청나라에 대한 복수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북벌에 동참하였고, 현종 대 화양동을 비롯한 고향에 은거하며 존주대의의 확립에 힘썼다. 숙종 대 초반 예송의 책임을 지고 유배 생활을 겪은 뒤, 경신환국 이후 다시 출사하여 조선중화주의의 실현에 앞장섰다. 그러나 원자 정호를 반대한 이유로 기사환국 때 사사되었다.
송시열 (宋時烈)
송시열은 조선 후기 효종~숙종 대 문신이이자 학자로서 김장생·김집의 제자이며, 주희와 이이의 학문을 모범으로 삼았다. 효종 대 중국 청나라에 대한 복수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북벌에 동참하였고, 현종 대 화양동을 비롯한 고향에 은거하며 존주대의의 확립에 힘썼다. 숙종 대 초반 예송의 책임을 지고 유배 생활을 겪은 뒤, 경신환국 이후 다시 출사하여 조선중화주의의 실현에 앞장섰다. 그러나 원자 정호를 반대한 이유로 기사환국 때 사사되었다.
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의병 (義兵)
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박씨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이시백과 박씨의 결연담으로 구성된 전반부와 병자호란 서사로 구성된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서사가 내적이 필연성을 가지고 연결되지 않아, 두 종류의 서사가 합쳐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 병자호란 서사에서 임경업의 활약에 따라 이본의 유형이 나뉘기도 하는데, 이는 박씨가 주인공인 이본들이 우선 성립된 이후에 역사소설인 「임경업전」의 내용이 첨가·확대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박씨전 (朴氏傳)
「박씨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이시백과 박씨의 결연담으로 구성된 전반부와 병자호란 서사로 구성된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서사가 내적이 필연성을 가지고 연결되지 않아, 두 종류의 서사가 합쳐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 병자호란 서사에서 임경업의 활약에 따라 이본의 유형이 나뉘기도 하는데, 이는 박씨가 주인공인 이본들이 우선 성립된 이후에 역사소설인 「임경업전」의 내용이 첨가·확대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조선후기 병자호란 관련 비.
서울 삼전도비 (서울 三田渡碑)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조선후기 병자호란 관련 비.
이안눌은 조선 후기에, 충청도순찰사, 형조판서, 홍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71년(선조 4)에 출생하여 1637년(인조 15)에 사망하였다. 자는 자민, 호는 동악이고,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으로 갔다. 전쟁이 끝난 후에 병세가 악화되어 죽었다. 당시(唐詩)에 뛰어나 이태백에 비유되었다. 문집에 실린 4,379수라는 방대한 양의 시는 지역과 관련된 내용이 많아서 민중 생활사와 사회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저서에 『동악집』 26권이 있다.
이안눌 (李安訥)
이안눌은 조선 후기에, 충청도순찰사, 형조판서, 홍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71년(선조 4)에 출생하여 1637년(인조 15)에 사망하였다. 자는 자민, 호는 동악이고,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으로 갔다. 전쟁이 끝난 후에 병세가 악화되어 죽었다. 당시(唐詩)에 뛰어나 이태백에 비유되었다. 문집에 실린 4,379수라는 방대한 양의 시는 지역과 관련된 내용이 많아서 민중 생활사와 사회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저서에 『동악집』 26권이 있다.
조선시대 『수남방옹유고』를 저술한 시인.
정훈 (鄭勳)
조선시대 『수남방옹유고』를 저술한 시인.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화의를 끝까지 반대하다 청나라에 끌려가 처형당한 세 명의 학자.
척화 삼학사 (斥和 三學士)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화의를 끝까지 반대하다 청나라에 끌려가 처형당한 세 명의 학자.
북한 평안북도 의주군에 있는 고려전기 이후 내성과 조선후기의 외성으로 구성된 석축 성곽. 산성.
백마산성 (白馬山城)
북한 평안북도 의주군에 있는 고려전기 이후 내성과 조선후기의 외성으로 구성된 석축 성곽. 산성.
조선 후기에, 부제학, 대사성,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민구 (李敏求)
조선 후기에, 부제학, 대사성,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중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일기.
산성일기 (山城日記)
조선 중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일기.
조선 후기에, 강화부유수, 공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심기원 (沈器遠)
조선 후기에, 강화부유수, 공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보(李俌)는 선조의 손자이며, 정원군과 연주군부인 구씨의 차남이다. 14세 때 선조 서(庶) 3남 의안군의 양자로 출계되었고, 능원군에 제수되었다. 류효립(柳孝立)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후사가 없었고, 측실에게서 5남 3녀를 두었다. 형인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이괄의 난 때 대비와 왕비를 호종하고, 병자호란 때는 인조를 호종하였다. 부친이 원종으로 추숭되자, 그도 대군으로 승격되었다. 그후 종친부 유사당상, 종부시 도제조를 지냈다.
이보 (李俌)
이보(李俌)는 선조의 손자이며, 정원군과 연주군부인 구씨의 차남이다. 14세 때 선조 서(庶) 3남 의안군의 양자로 출계되었고, 능원군에 제수되었다. 류효립(柳孝立)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후사가 없었고, 측실에게서 5남 3녀를 두었다. 형인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이괄의 난 때 대비와 왕비를 호종하고, 병자호란 때는 인조를 호종하였다. 부친이 원종으로 추숭되자, 그도 대군으로 승격되었다. 그후 종친부 유사당상, 종부시 도제조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 병조좌랑, 예조좌랑, 동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신계영 (辛啓榮)
조선 후기에, 병조좌랑, 예조좌랑, 동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나만갑은 조선 후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하여 관량사로 활동한 인물이다. 나만갑은 재주가 있었고 효성이 깊은 인물이었다. 청현직을 두루 거쳤으나 잘잘못을 논하기를 즐겨하여 대신(大臣)을 능멸한다는 죄를 자주 입었고, 또 편당(偏黨)을 즐긴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괄의 반란 때 힌남도원수 심기원의 종사관으로 활동하였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호종한 공로가 있었다.
나만갑 (羅萬甲)
나만갑은 조선 후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하여 관량사로 활동한 인물이다. 나만갑은 재주가 있었고 효성이 깊은 인물이었다. 청현직을 두루 거쳤으나 잘잘못을 논하기를 즐겨하여 대신(大臣)을 능멸한다는 죄를 자주 입었고, 또 편당(偏黨)을 즐긴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괄의 반란 때 힌남도원수 심기원의 종사관으로 활동하였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호종한 공로가 있었다.
심양관은 청나라 수도 심양에서 인질로 끌려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등이 머물던 처소 겸 집무소이다. 청나라에서는 고려관이라고 불렀으며 심양 대남문 북쪽 100보 지점에 있었고 청나라가 북경으로 천도하며 처소를 옮기기 전까지 사용하였다. 세자 일행은 인질의 신분이기는 하였으나, 조선과 청의 연락을 담당하였고 외교 업무도 수행하여 해외공관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심양관의 유지 관리에 막대한 경비가 소요되고 세자가 청의 황족 및 장수들과 친교를 맺고 세자빈이 무역에 간여하는 등의 일로 인조에게서 의혹과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심양관은 현재 철거되어 찾아볼 수 없다.
심양관 (瀋陽館)
심양관은 청나라 수도 심양에서 인질로 끌려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등이 머물던 처소 겸 집무소이다. 청나라에서는 고려관이라고 불렀으며 심양 대남문 북쪽 100보 지점에 있었고 청나라가 북경으로 천도하며 처소를 옮기기 전까지 사용하였다. 세자 일행은 인질의 신분이기는 하였으나, 조선과 청의 연락을 담당하였고 외교 업무도 수행하여 해외공관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심양관의 유지 관리에 막대한 경비가 소요되고 세자가 청의 황족 및 장수들과 친교를 맺고 세자빈이 무역에 간여하는 등의 일로 인조에게서 의혹과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심양관은 현재 철거되어 찾아볼 수 없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조선이 쌍령에서 청나라 군대와 벌인 전투.
쌍령전투 (雙嶺戰鬪)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조선이 쌍령에서 청나라 군대와 벌인 전투.
속환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수십만의 조선인 몸값을 그 주인에게 치러주고 송환해 온 일이다. 속환은 왕족이나 군인의 경우 국가에서 몸값을 치러주는 공속과 일반인들의 경우 가족들이 개별적으로 치르는 사속이 있었다. 정묘호란 후에는 의주나 중강, 병자호란 후에는 심양에서 주인들과 흥정을 하는 시장이 열렸다. 처음에는 속환가가 1인당 포 10필(쌀 10석)정도였으나, 점점 주인들이 몸값을 지나치게 많이 요구하여 성사가 쉽지 않았다. 조선 정부 차원에서 특별사신인 속환사가 3차에 걸쳐 파견되었으나 총 2~3천 명 정도밖에 돌아오지 못했다.
속환 (贖還)
속환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수십만의 조선인 몸값을 그 주인에게 치러주고 송환해 온 일이다. 속환은 왕족이나 군인의 경우 국가에서 몸값을 치러주는 공속과 일반인들의 경우 가족들이 개별적으로 치르는 사속이 있었다. 정묘호란 후에는 의주나 중강, 병자호란 후에는 심양에서 주인들과 흥정을 하는 시장이 열렸다. 처음에는 속환가가 1인당 포 10필(쌀 10석)정도였으나, 점점 주인들이 몸값을 지나치게 많이 요구하여 성사가 쉽지 않았다. 조선 정부 차원에서 특별사신인 속환사가 3차에 걸쳐 파견되었으나 총 2~3천 명 정도밖에 돌아오지 못했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과 하남시, 서울시 송파구에 걸쳐 있는 산.
남한산 (南漢山)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과 하남시, 서울시 송파구에 걸쳐 있는 산.
조선 후기에, 부사과,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박종우 (朴宗祐)
조선 후기에, 부사과,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